경상남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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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개요

경상남도는 2023년 인구 3,340,470으로 행정구역은 8개시와 10개군, 314개 읍면동으로 되어 있다. 도청소재지는 진주시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시절 부산으로 옮겨졌다 1983년 창원으로 이전하였다. 2024년 현재 경남도청은 창원시 의창구 중앙대로 300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10,532.7km2 전국의 10.5%를 차지하며, 인구는 329만명으로 전국의 6.5%를 차지한다. 2011년 5월을 기준으로 18개 시·군 320개 읍·면·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상남도의 각 행정구역은 다음과 같다.

경상남도 행정지도1

창원시

창원시는 진해시 창원시 마산시를 통합한 통합시다. 부산에서 도청이 창원으로 옮겨 오고, 공업도시로 계획적으로 개발되면서 급속하게 발전한 도시이다. 외부인가 상당하며, 외국인 노동자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GDP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살기에는 좋지 않은 곳이다. 대부분이 공장이고, 주거지와 구분되어 있다고는 하나 공업도시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창원시에 출근하는 상당수가 마산이나 장유에 거주하고 있다. 이것은 주택가격과 환경적인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창원시 지명유래는 마산, 창원, 진해로 따로 구분해 소개합니다.

창원시 지명유래

창원(昌原)이라는 지명은 1408년(조선 태종 8년)에 처음 사용되었다. 이는 두 지역의 이름을 합친 것으로, 당시의 의창현(義昌縣)과 회원현(會原縣)을 통합하여 ‘창원(昌原)’이라는 지명이 만들어졌다. ‘창(昌)’은 번성함을, ‘원(原)’은 평야를 뜻하며, 이를 통해 풍요롭고 번창하는 지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지역은 이후로도 행정 중심지로 발전해왔으며, 현재는 통합 창원시의 중요한 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

마산시 지명유래

마산(馬山)이라는 지명은 여러 설이 존재한다. 첫 번째 유력한 설은 조창 설치와 관련된 것이다. 고려 성종 때 마산에 곡물을 보관하는 창고인 석두창이 설치되었는데, 곡식을 측정하는 도구인 ‘두척(斗尺)’에서 ‘두(斗)’와 ‘척(尺)’을 합해 ‘마(馬)’자로 표현하고, 여기에 ‘산(山)’을 덧붙여 ‘마산(馬山)’이라는 지명이 만들어졌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은 용마산(龍馬山)과 관련이 있다. 마산의 중심부에 있는 용마산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로, 이 산을 옛날에는 ‘오산(午山)’이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오(午)’와 ‘마(馬)’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마산’이 되었다는 해석이다. 이는 병자호란 때 임경업 장군이 용마를 타고 전투에 나섰다는 전설과도 연결된다.

마지막으로, 지형적 특성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마산 지역의 산세가 말의 등에 탄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말 마(馬)’와 ‘산(山)’을 합쳐 ‘마산’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진해시 지명유래

진해(鎭海)라는 지명은 ‘바다를 진압하고 다스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이름은 1912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해군 군항을 개발하면서 붙인 명칭이다. 진해 지역은 본래 웅천현(熊川縣)으로 불리다가, 1910년 일본 제국 해군이 이곳에 군항을 건설하면서 ‘진해(鎭海)’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진(鎭)’은 군사적 방어 거점을 의미하며, ‘해(海)’는 바다를 뜻한다. 이를 통해 ‘바다를 지키는 곳’이라는 의미를 부여받았다.

진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삼진(三鎭) 지역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진해현이 과거 삼진 지역에 속해 있었다. 이후 이 지역은 일본에 의해 해군 기지로 개발되었고, 그때부터 진해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김해시

김해시는 경남이지만 부산권에 속한다. 사상에서 부산김해 경전철이 운행중이다. 같은 경남권인 양산과도 교류가 적으며, 부산과 대부분 교류하는 편이다. 대부분이 공업과 농업 단지로 형성되어 있다. 가야국의 유물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진주시

한때 경남도청이 자리한 곳으로 자부심이 대단한 곳이다. 유교적 전통이 강하고, 향토색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강한 곳이다. 전북의 전주와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돈과 행정적 중심이 창원이라고 한다면 전통과 자존심의 중심은 진주다. 창원이 어디서 진주에 비겨? 뭐 이런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젠 예전의 명성만을 추억 할 뿐 별다른 대안이 없이 쇠락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양산시

경남에 속하지만 부산과 가장 가까운 곳이자 부산권이다. 35만 정도의 중소도시임에도 많은 일자리 창출로 인해 부산의 인구가 급속하게 양산으로 옮겨가고 있다. 부산도시철도 2호선이 오래전 양산과 연계 개통되었고, 사송신도시가 개발되고 있어,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연장선이 사송신도시와 양산종합운동장까지 연장될 계획이다.

거제시

거제(巨濟)라는 지명은 신라 시대부터 사용된 이름으로, ‘거(巨)’는 ‘크다’를 의미하고 ‘제(濟)’는 ‘도와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지명은 큰 섬이자 많은 사람을 돕고 보호하는 지역이라는 의미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현재의 이름인 ‘거제’로 개칭되었으며, 이후 거제도는 행정적, 군사적 중심지로 발전해왔다.

거제는 삼한 시대에는 변한의 독로국이라는 작은 국가였고, 신라에 병합된 이후에는 ‘상군(裳郡)’으로 불리다가 이후 ‘거제군’으로 바뀌었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해상 방어와 교역의 요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조선 후기에는 유배지로도 사용되었다.

통영시

통영시의 옛지명은 충무였다. 1955년 9월 1일 통영읍 일원에서 시내 중심지역이 충무시로 승격하여 통영군과 분리 된다. 1995년 통영군과 충무시가 다시 합동하여 통영시가 된다.

사천시

사천(泗川)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부터 유래되었다. 본래 이 지역은 사물(史勿)로 불렸으며, 이는 고대 가야 연맹체의 일부였던 사물국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고, 사물현이 사수현(泗水縣)으로 개명되었다. 이때 ‘사수’는 ‘물이 맑은 강’을 의미한다.

고려시대에는 사주(泗州)로 승격되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사천(泗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칭되었다. 이 지명은 ‘맑은 물이 흐르는 고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밀양시

밀양(密陽)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에 변한의 미리미동국에서 유래되었다. 밀양의 옛 이름은 ‘미리벌’로, 이는 신라 시대에 한자로 표기된 ‘밀성군(密城郡)’에서 유래했다. ‘미리’는 ‘크다’를, ‘벌’은 ‘들판’을 의미하며, 이 이름은 후에 ‘밀성’으로 한자화되었다.

757년 신라 경덕왕 때 전국의 행정 구역을 정비하며 ‘밀성군’으로 개칭되었고, 고려 시대에 들어서는 밀주(密州)로 승격되었다. 이후 조선 태종 때에는 밀양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이때부터 현재의 ‘밀양’이라는 지명이 자리잡았다. ‘밀(密)’은 ‘빽빽하게’ 혹은 ‘조밀하다’라는 뜻을, ‘양(陽)’은 ‘햇빛이 밝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함안군

함안군(咸安郡)의 지명 유래는 지역의 자연적 풍요와 평화로운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咸(함)’은 ‘모두’ 또는 ‘함께’라는 의미로, 이 지역이 여러 강과 평야가 어우러진 풍부한 자연 환경을 가진 곳임을 상징한다. ‘安(안)’은 ‘평안하다’는 뜻으로, 지역 주민들이 안정되고 평화롭게 생활하는 지역임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의미를 담아 지명된 ‘함안’은 조선시대에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함안은 신라 시대에는 ‘아시현(阿尸縣)’으로 불렸으며, 이후 고려 시대에는 ‘함성(咸城)’이라는 이름으로 변했다. 지역의 자연 환경과 평화로운 생활 여건이 함안이라는 지명에 깊이 담겨 있으며, 지역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생활터전으로 인식되어 왔다.

거창군

거창군(居昌郡)의 지명 유래는 조선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거(居)’는 ‘살다’를, ‘창(昌)’은 ‘번성하다’를 의미한다. 즉, ‘거창’은 사람들이 번성하며 살기 좋은 지역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지역은 신라시대에는 ‘고성군(古城郡)’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에는 ‘거창현’으로 명명되었으며, 이후 조선 태종 때 ‘거창군’으로 승격되었다.

고성군

경남 고성군(固城郡)의 지명은 견고한 성을 의미한다. ‘고(固)’는 튼튼하다, ‘성(城)’은 성곽을 뜻하여 고성은 튼튼한 성곽을 가진 지역을 의미한다. 본래 이 지역은 신라 시대에 ‘고차성(古嵯城)’이라 불렸으며, 고려 시대에 들어와 고성으로 개명되었다. 이러한 지명은 지역의 방어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고성군은 오랜 역사 동안 전략적 요충지로서 역할을 해왔으며, 지명의 의미 역시 그러한 지역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하동군

하동군(河東郡)의 지명은 물길과 관련된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다. ‘하동’은 ‘강의 동쪽’을 의미하며, 남해안에 위치한 섬진강의 동쪽에 자리한 지역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신라 시대에는 ‘화개현(花開縣)’이라 불리다가 고려 시대에 ‘하동’으로 개명되었다. ‘하동’이라는 이름은 지리적 위치와 남해안 및 섬진강과의 밀접한 연관성을 반영하여 붙여진 것으로, 하동군의 풍부한 자연과 역사적 배경을 나타낸다.

함양군

함양군(咸陽郡)의 지명은 풍요롭고 햇살이 가득한 지역을 의미한다. ‘함(咸)’은 ‘함께하다’ 또는 ‘모두’를 뜻하며, ‘양(陽)’은 ‘햇볕’을 의미하여, 햇볕이 풍부한 지역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지역은 본래 신라 시대에 ‘아림(阿林)’이라 불렸으나 고려 시대에 들어 ‘함양’으로 개명되었다. 이러한 지명은 자연환경과 지역의 기후적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햇살이 비추는 풍요로운 고장임을 나타낸다.

합천군

합천군(陜川郡)의 지명은 ‘좁은 땅에서 큰 강이 흐르는 지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합(陜)’은 좁다, ‘천(川)’은 강을 뜻하며, 이는 이 지역의 지리적 특성인 좁은 계곡을 통해 흐르는 강을 나타낸다. 본래 합천은 삼국시대에 ‘다라국(多羅國)’으로 불리었으며, 이후 신라 경덕왕 때 합천으로 개칭되었다. 이 지명은 지역의 자연환경을 반영하며, 합천군이 지닌 역사적 배경을 잘 보여준다.

남해군

남해군(南海郡)의 지명은 한반도 남쪽 해안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남해’는 ‘남쪽의 바다’를 의미하며, 이 지역이 남쪽에 위치한 바다를 끼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본래 신라 시대에는 ‘남해현’으로 불리다가 고려 시대에 들어 ‘남해군’으로 변경되었다. 남해군이라는 지명은 이 지역의 지리적 위치와 남쪽 해안가에 접해있는 특성을 나타내며, 해양과 관련된 생활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산청군

산청군(山淸郡)의 지명은 ‘맑은 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산(山)’은 산을 뜻하고, ‘청(淸)’은 맑고 깨끗하다는 뜻으로, 이 지역의 청정한 자연환경을 반영한 이름이다. 산청군은 예로부터 맑은 산과 깨끗한 물로 유명한 지역으로, 신라 시대에는 ‘단성(丹城)’으로 불리다가 고려 시대에 ‘산청’으로 개칭되었다. 이 지명은 지역의 자연적 특성과 청정한 환경을 나타내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의령군

의령군은 경상남도 중앙부에 자리하는 전형적인 농촌 중심의 군이다. 동으로는 창녕과 함안이 있고, 서쪽으로는 지리산을 접하는 산청군과 합천군이 자리한다. 남쪽은 진주시가 있다.

의령군(宜寧郡)의 지명은 ‘편안하고 기쁨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의(宜)’는 ‘적합하다’ 또는 ‘마땅하다’는 뜻을, ‘령(寧)’은 ‘편안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의령이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에 붙여진 것으로, 주민들이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는 지역이라는 상징성을 반영한 것이다. 신라 시대에는 ‘우진야현(牛津野縣)’이라 불리었으며, 고려 시대에는 ‘의령현’으로 개칭되었다.

  1.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경상남도행정지도, 작성자 장길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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