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합포구 오동동 역사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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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동 지명의 유래

오동동이라는 이름은 지역의 전설적인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옛날 진주의 최대감에게는 ‘오동’이라는 이름의 애지중지하는 딸이 있었습니다. 오동은 집안 머슴 돌쇠와 사랑에 빠졌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최대감은 그들을 가두었으나, 최 대감의 부인의 도움으로 둘은 도망쳐 마산의 작은 포구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돌쇠는 옹기를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했고 오동은 아들을 낳아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이 가족은 마산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재산을 모으고, 아들은 과거 시험에 장원급제를 하여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오동과 돌쇠의 이야기와 그들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들이 정착했던 마을을 ‘오동마을’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곳이 지금의 ‘오동동(午東洞)’이 되었습니다.

이 전설적인 이야기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과 가족의 가치를 상징하며, 오동동이라는 지명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이름은 오동과 돌쇠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는 의미로 남아,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이 지역은 마산항을 통해 들어오는 배들이 처음으로 닻을 내리는 곳에 오동나무가 많아 자연스럽게 ‘오동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오동나무는 옛날부터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졌기 때문에, 오동동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번성함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동동의 역사

오동동은 조선시대부터 중요한 항구로 자리매김해 온 마산항의 일부로, 이 지역은 항구와 함께 발전해 왔습니다. 마산항은 조선 후기부터 무역과 교역의 중심지로 성장하였고, 자연스럽게 오동동도 상업과 교류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마산항이 개항하면서 오동동은 외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지고 일본과 서구 열강들이 드나들면서 근대화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마산항은 일본의 식민 경제의 일환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이로 인해 오동동도 상업적, 경제적으로 활발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당시 오동동은 많은 일본 상인들과 상업 시설들이 자리 잡으며 상업 지구로 번성하였고, 이 시기부터 마산의 근대적인 도시 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건설된 근대식 건물과 도로들은 지금까지도 오동동의 역사적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해방 이후, 오동동은 다시금 한국의 상업과 문화 중심지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마산은 1960년대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고, 오동동은 이러한 역사적 사건의 현장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1960년 3.15 의거 당시 오동동은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가득했던 장소로 기억되며, 이 지역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오동동의 문화와 현재

오늘날 오동동은 과거의 역사적 유산과 현대적인 발전이 공존하는 곳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여전히 상업적으로 중요한 지역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행사와 관광 명소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오동동에 위치한 ‘오동동 문화광장’은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장소로, 다양한 문화 행사와 공연이 열리며 지역 문화를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동동은 또한 마산의 해산물 시장이 자리잡은 곳으로, 신선한 해산물과 활기찬 시장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곳의 시장은 마산항과의 연계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로,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는 오동동의 매력을 잘 보여줍니다.

마산 오동동은 이렇게 긴 역사를 거쳐 오면서도 그 역사적 흔적과 지명을 보존하며, 오늘날까지도 마산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동나무에서 유래된 이 이름은 지금도 지역 주민들에게 친숙하며, 오동동은 여전히 마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로 남아 있습니다.

황정자의 ‘오동동’ 노래 – 배경과 의미

황정자의 ‘오동동 타령’은 1955년에 발표된 신민요 스타일의 노래로, 작사 야인초, 작곡 한복남이 함께한 곡입니다. 이 노래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오동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 지역의 서민적이고 활기찬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가사에서는 오동동의 전통적인 요소와 당시의 삶을 묘사하며, 기생들의 장구 소리와 한량들의 밤 놀음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오동동이 과거에 기생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곳임을 보여주며, 그 시절의 서민 문화와 사회적 풍경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곡은 서양 스윙 리듬과 전통적인 피리 소리가 결합된 이색적인 형태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혁신적인 신민요 스타일을 선보였다고 평가됩니다. 노래의 배경에 대해서는 한때 ‘오동동’이 전라남도 여수 오동도를 지칭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황정자의 확인을 통해 경상남도 마산의 오동동이 배경임이 명확해졌습니다. 오동동은 1960년대에 기생들과 요정들이 많았던 곳으로, 이와 같은 풍경이 노래의 가사에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오동동 타령’은 시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곡으로 자리 잡았으며, 마산 오동동의 상징성을 대중음악을 통해 널리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곡은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서민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며 오동동의 매력을 표현한 대표적인 곡으로,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외부인들에게도 오동동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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