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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읍 구정리
개요
구정리(九井里)는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읍의 리다. 구정 마을과 두무동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구정은 아홉개의 우물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는 일로읍 소재지에서 동남쪽 영산강 쪽으로 4㎞ 떨어진 거리에 있다. 이 곳에는 조선 광해군 때 의병대장이었던 소포 나덕명(1551-1610년)이 쌓은 것으로 전해지는 길이 150미터 폭 3.5미터 가량의 소포제(구정리와 의산리 사이)가 있어 소 폿들로 불리는 농지가 많이 조성되어 있다.
구정동은 마을에 아홉 개의 우물이 있다 해서 九井洞 이라 했다하나 마을 전체가 바위로 이뤄져서 우물은 없다.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두무동 정관동 죽산동 일대를 병합하여 다시 무안군 에 편입하였다. 문헌으로 살펴본 지명의 변화는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노촌면 구정리 정관리로 나온다.
1912년의 자료에는 일로면 구정동 두무동으로 나오며 1917년의 자료에서는 일로면 구정리 두무동 정관동 구정동 죽산동 각 일부로 나온다. 이어 1987년의 자료에서는 현재처럼 일로읍 구정리 구정과 두무동으로 나온다.
[전국의 구정리]
-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
-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구정리
-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구정리
-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구정리
-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읍 구정리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구정리
-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구정리
지명유래
구정
무안군에서 발행한 마을유래지에 의하면‘구정리는 9개의 우물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나 마을에는 우물이 없다. 원래 이 마을은 물이 귀한 곳이다. 마을이 암반 위에 자리하고 있어서 오래 전부터 허드렛물은 물론 식수도 무척 귀했다.
얼마 전까지는 마을에서 3㎞ 이상 떨어진 의산리 산두마을에서 지하수를 파 마을까지 옮겨온 뒤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는 상수원시설이 되어있어 수돗물을 사용할 예정이다. 지금은 어려움이 없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 때문에 생긴 일이 많았다.
몇 년 전까지 마을에 공동샘이라 부르는 큰샘이 있었는데 그곳에 뚜껑을 달아 각 가정별로 물 배급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물을 다려먹었다고 한다.‘다려먹다’는 ‘기다려서 떠 먹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지역 사투리다.
물이 부족한 탓에 삼천동의 삼천저수지를 나누어 먹었다. 주변 6개의 마을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열고 조를 편성해 물지기를 역할을 했다. 비가 조금만 오지 않아도 물이 부족해 마을끼리 다투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두무동
두무동은 외진 마을이다. 구정동도 깊숙하게 자리 잡았지만 두무동의 숯골은 마 치 귀양지처럼 적막감이 들 정도로 오지 마을이다. 무안군에서 발행한 마을유래지 에는 두무동 지명유래를 ‘마을의 형성 초부터 한곳에 모여산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 흩어져서 드문드문 살았다 하여 두무동’이라 했다 한다. 원래 한자로 쓴 두무동은 斗武洞이라 했는데 주민들이 너무 강한 느낌을 준다 하여 의견을 모아 斗務洞으로 바꿨다. 즉 곡식을 생산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면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마을은 두무동과 숯골로 나뉘어 있다.
구정교회
- 전남 무안군 일로읍 구정길 198-13
무안읍에서 두 번째 세워진 교회이다.
소댕이 나루
- 전남 무안군 일로읍 구정리 552-3, 로 추정되고 있다.
매봉산 너머에 소당이 잇다. 소댕이라고 한다. 영암으로 건너는 나루가 있 소댕이나루로 불렸다고 한다. 영암 사람들이 일로장을 가려면 지나가야해서 큰 길이 나 있었다고 한다.
숯골
두무동 남쪽에 있는 마을로 산중에서 숯을 구었다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병풍산
영산강에서 구정리 방향의 산을 보면 병풍처럼 가파른 절벽이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매봉산
구정리 서쪽 산이 매를 닮아 부른다.
온난골
각골(까골)
들끝
선바위
너벙바위(마당바위)
언머리
앞뫼
처장골(초분골)
한새머리(두무동과 갈라지는 삼거리)
중성골
달걀배미
복아실
모새초리
호남골
[참고 자료 및 사이트]
네이버 블로그 “일로읍 지명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