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금정구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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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구 지역 개요

금정구 법정동 행정동

부산광역시 금정구 행정지도1

금정구 법정동

부곡동 서동 오륜동 금사동 장전동 선동 두구동 노포동 청룡동 남산동 구서동 금성동 회동동

금정구 행정동

서1동 · 서2동 · 서3동 · 금사회동동 · 부곡1동 · 부곡2동 · 부곡3동 · 부곡4동 · 장전1동 · 장전2동 · 선두구동 · 청룡노포동 · 남산동 · 구서1동 · 구서2동 · 금성동

금정구 지명유래

금정구(金井區)

금정(金井)이른 지명은 금정산에서 왔으며, 금정산 정산에 있는 금샘에서 왔다고 한다.

구서동(久瑞洞)

금정구의 중앙에 위치하는 곳으로 구서나들목과 금정경찰서, 금정우체국이 있는 금정구의 중심이라할 만한 곳이다. 구서는 구세라는 옛지명에서 왔다. 구세라는 지명은 중국 당나라 장공예는 9대가 한 집안에서 살았다는 내용으로 집안이 화목한 것을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너무나 황당해 보인다. 다른 견해로는 구세리가 굿판을 하는 동네로 굿판, 굿터라는 설이 있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때 구세동, 금단동, 두실동이 합하여 구서동이 되었다. 이것이 지금도 거의 변함없이 전해 오고 있는 것이다. 두실명은 사라지고 역명만 남아 있는 상태다.

금사 회동동(錦絲回東洞)

금사동과 회동동은 법정동은 구분되었지만 인구 감소로 인해 합해져서 행정동은 금사회동동으로 통합되었다. 1983년 서3동에서 분동했고, 2018년 10월 1일부로 금사회동동으로 명칭변경된다.

금사동(錦絲洞)

동래군 동상면 지역에 위치한 사천동과 금천동이 하나가 되어 금사동이 되었다. 금사마을은 없었고, 이곳에 있던 금천(錦川)마을과 사천(絲川)마을의 앞자를 따서 금사동이라 불렀다.

금사회동동을 가로지르는 금사로

회동동(回東洞)

회동동은 법정동으로만 남아 있고, 금사회동동에서 통합관리하고 있다. 회동은 이곳에 있던 옛 마을 회천과 동대동이 통합되어 회동이 되었다. 지금은 부산에서도 상당히 소외되고 구석진 곳이었지만 조선시대 후기만 해도 수영강 상류에 속하면서 아름다운 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바위가 많고 절경이 좋아 대를 지어 선비들이 쉬어가던 곳이라고 한다.

금성동(金城洞)

금성동은 산성마을로도 불리는 곳으로 동래군 서면에서, 양산군 좌이면 금성리로 변경되고, 1918년에는 구포면에 속하다. 1963년 부산진구에 편입된다. 그러다 1988년 금정구 관활이 되저 지금에 이르렀다. 지명은 금정구의 유래가 되는 금정산의 금정(金井)에서 유래했다.

남산동(南山洞)

남산동의 지명 유래는 이곳에 있던 남산(165m)에서 왔다. 금정산 동쪽 기슭 아래에 솟을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범어사에서 보면 남산이 살짝 솟아 올라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금정산의 남쪽에 있는 산이란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두서동이 아파트 단지인 것에 비하면 남산동은 대부분이 주택으로 형성되어 있다.

부곡동(釜谷洞)

부곡은 부산의 부가 되는 가마 부(釜)를 사용하고 있다. 부곡동의 옛지명은 가마실이었으며, 한자로 표기한 것이 부곡이다. 가마실은 부곡동에서 서동으로 넘어가는 골이 가마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부곡동에서 서동으로 넘어가는 서동고갯길

서동(書洞)

부곡동에서 고개를 넘어가면 나오는 곳이 서동이다. 서동은 3동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서쪽으로는 명장동과 북동쪽으로는 금사회동동과 맞닿아 있다. 서동은 금사회동동과 같은 생활권이고 정서를 같이 하는 곳이다. 부곡동과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는 곳이다.

서동은 서동의 옛 자연 마을인 섯골에서 왔다. 한자로 책 서(書)를 써서 서로로 불렀다. 서동은 한 때 동상동으로 불렸지만 영동의 동삼동과 거의 비슷해서 이름은 개명하고 서동으로 바꾸었다.

동상동(東上洞)

동상동은 서동의 옛 지명이다. 동상은 조선시대 동래군 동상면에 속해 있던 곳이라 중심 마을이라 하여 불려진 곳이다. 동상동이란 행정명은 1959년부터 1982년까지 사용되었다. 서울에서 온 사람이 부산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동삼동을 가자고 했더니 동상동으로 가서 대판 싸웠다는 설은 아직도 유명하다.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많다. 버스를 타도 동삼동과 동상동을 헷갈려 반대로 갔다고 되돌아오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결국 동삼동은 그대로 두고 동상동의 원래 지명인 서동을 다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동상동은 1959년 지금의 서동, 금사동, 회동동을 합해 부른 지명이다. 아직도 서동과 금사동, 회동동을 가면 ‘동상’이란 이름을 가진 건물이나 지명 등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동상초등학교, 동상계량사, 동상약국, 동상중앙교회, 동상태권도 등이 있다.

동상은 동래를 기존을 동쪽 위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는 동래가 부산의 중심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시실산에서 바라본 서동과 금사공단 모습 2009년 1월

선두구동(仙杜邱洞)

오륜대저수지 상류에 속하는 지역이다. 1998년 선동과두구동이 합해진 이름이다. 선동과 두구동은 마을이 다르다. 부산에서도 외지에 속하며, 현재는 관광지로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상수도권이기 때문에 개발은 거의 불가능하다. 인구는 24명 정도로 금성동을 제외하면 금정구에서 가장 적은 인구이고, 부산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적은 동이다.

선동(仙洞)

선동은 선돌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졌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하정, 상현, 하현, 신현, 신철 5개의 자연들이 합하여 선동이 되었다. 현재 하현 마을은 정수지로 지정되어 수몰되어 사라졌다.

두구동(杜邱洞)

1914년 임석동, 수내동, 대두동, 중리동, 죽전동, 송정동 일부가 합해서 두구동이 되었다.

장전동(長箭洞)

부산대학교가 있어 번화가를 이룬 곳이기도 하지만 2024년 현재 부산대학앞 거리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쇠락하고 말았다. 장전은 긴 화살이란 뜻이다. 대나무가 많았던 이곳에서 대나무로 화살을 만들던 마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앞으로 온천천이 흐르고, 뒤로는 금정산이 자리하고 있다. 배산임수의 형태를 가진 곳으로 계속하여 아파트들이 들어서는 곳이기도 하다.

청룡노포동(靑龍老圃洞)

청룡노포동은 청룡동과 노포동이 합해진 이름이다. 북쪽으로는 금정산이 자리하며, 선도구동과 남상동의 사이에 있는 곳이다. 노포동에 울산과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 터미널과 부산도시철도 1호선의 종착역인 노포역이 있는 곳이다.

청룡동(靑龍老圃洞)

범어사 동쪽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산속 싶은 곳? 에 자리하고 있어 주변에 사는 사람도 잘 들어가지 않는 외진 곳 중의 하나다. 행정구역으로 청령동과 노포동을 합하여 1998년 청룡동이라 하였으나 199년 다시 청룡노포동으로 개칭한다.

청룡이란 지명은 범어사의 동편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불교에서 이십팔수 가운데 동쪽에 있는 일곱성수를 청룡이라 부른다. 범어사 동편이기에 청룡이란 지명을 붙인 것이다.

노포동(老圃洞)

노포동은 조선시대 동래구 북면의 작장리와 소산리가 있는 지역이다. 1914년 노포동, 대룡동, 작장동, 녹동 일부가 합하여 노포동이 되었다. 노포는 농사를 잘 짓는 농부, 농사에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 늙은 농부를 뜻한다. 이 지역이 밭이 많아 많은 농사를 짓은 탓에 그렇게 부려진 것으로 보인다.

  1.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금정구, 이미지는 장길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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