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동래구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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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구 지역 개요

동래는 부산 옛 수도와 같은 곳이다. 부산이 있기 전 동래가 있었다. 부산이란 이름은 근대화의 산물이라면 동래는 조선시대까지 부산 전 지역을 관활했던 수도와 같은 곳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은 조선을 약탈하기 위하여 부산항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결국 왜관이 있던 부산항과 남포동 일대를 부산의 중심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것이 근대 부산의 시작이다.

부산광역시 행정지도1

동래는 삼국 이전에 부산과 주변 지역을 다스린 거칠산국이 자리하던 곳으로 신라 경덕왕이 이곳을 ‘동래’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동래구는 지리적으로 부산의 정중에 해당된다. 마안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명장동 안락동, 남쪽은 복천동, 수안동, 서쪽은 명륜동, 온천동, 사직동이 있고, 북동-북쪽은 명륜동이 자리하고 있다. 도시철도 1호선과 3호선, 4호선이 지나간다.

동래구 행정구역 지도2

동래구의 법정동과 행정동

동래구 법정동

낙민동 명륜동 명장동 복천동 사직동 수안동 안락동 온천동 칠산동

동래구 행정동

수민동 · 복산동 · 명륜동 · 온천1동 · 온천2동 · 온천3동 · 사직1동 · 사직2동 · 사직3동 · 안락1동 · 안락2동 · 명장1동 · 명장2동

동래구 지명 유래

동래(東萊)

동래의 지명유래는 조선시대 이 지역이 동래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는데서 유래했다. 동래군은 거산칠국이었고, 신라에 편입된 후 경덕왕에 의해 동래군이 되었다. 동래의 옛 지명은 장산국 또는 내산국이었다. 삼한시대 독로국이 동래였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독로국이 독로-동네-동래로 변형되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거칠산은 ‘거칠다’의 한자 표기다. 황령산을 거친 뫼로 표현하는데, 이 지역이 다듬어지지 않은 야산과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동래의 ‘래’ 한자인 萊는 경작되지 않은 거친 곳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거칠국’에서 동래가 왔을 가능성은 더 높아 보인다.

동래시장 앞 교차로 주변 풍경 2023년 4월

명륜동(明倫洞)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향교와 동래읍성이 있는 곳으로 교육과 기관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명륜은 향교 내에 자리한 명륜당에서 유래하였다.

명장동(鳴藏洞)

명장동은 안락교차와 서동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도시철도 4호선이 지나며 명장역이 명장동의 중심이다. 부산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 동래통합사업소가 있다.

명장의 지명 유래는 불투명하다. 조선시대 이곳은 동래부 동면 명장리(鳴壯里)로 불렸다. 조선시대 후기에 명장리(鳴藏里)로 표기한 것을 보면 동일한 이름을 한자만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알 길이 없다. 일반적인 설로는 명편을 관리하던 곳에서 기원된 것은 아닌지 추측할 뿐이다. 명편은 옛날 의장 때 스는 기구의 하나로 흔들어 소리를 내어 사람들에게 주목하게 하고 조용히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동래부사가 독직을 지휘하여 양산과 기장까지 지휘했고, 이때 사용하던 명편을 지금의 명장(鳴藏)을 간수하게 했다고 한다. 아마 이것이 가장 신빙성 있는 지명 유래로 보인다.

복산동(福山洞)

복산동의 지명은 법정동인 복천동가 칠산동이 합성된 것이다.

복천동(福泉洞)

복천동은 이곳에 있던 우물에서 유래된 것이다. 동래 읍성에는 6개의 우물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옥미정동, 대정동, 애정동 등의 우물이 있었다. 복천동에는 동래시장, 내서초등학교, 복천박물관, 동래읍성 역사관, 동래읍성북문, 서장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과거 동래의 중심지였음을 잘 보여주는 증표들이다.

복전박물관 야외 전시장에서 바라본 복천동 모습 2023년 4월
칠산동(漆山洞)

칠산도의 지명 유래는 동래의 옛 지명인 거산칠국에서 왔다. 칠(漆)은 ‘거칠다’는 뜻으로 황령산을 ‘거친 뫼’로 불렀다. 현재 마안산을 다른 이름으로 칠산이라 부른다. 복천동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사직동(社稷洞)

사직동의 지명유래는 이곳에 사직단에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사(社)는 토지신이고, 직(稷)은 곡물신이다. 임금과 지방수령이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사를 드려 평안을 비는 곳이었다. 여고리와 석사리라는 자연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는 사직단이 민족의 혼을 깨운다하여 일절 금지 시켰다.

수민동(壽民洞)

수민동의 지명유래는 관할 법정동인 수안동과 낙민동을 합성하여 만든 것이다.

수안동(壽安洞)

수안동은 동래읍치의 동헌이 있던 곳으로 동래시장, 수안시장 주변을 말한다. 수안은 수안(首安)와 수안(水安)으로 표기한다. 수안(首安)는 머리를 뜻하며 동헌에 집무하던 동래부사라는 의미이며, 수안(水安)은 이 지역이 땅을 조금만 파도 맑은 물이 흘러 나온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리고 한다. 실제로 이 지역은 아직도 우물이 많으며, 맑은 물이 흘러나오는 지역이다.

수안동의 동래부동헌 총신당, 2023년 4월
수민동(壽民洞)

수민동의 지명유래는 이곳이 조선시대에는 남문동변동으로 불리던 곳이라고 한다. 뜻은 수령이 민심을 살피러 나가는 지역으로 백성을 즐겁게 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락동(安樂洞)

충열사가 자리한 곳으로 충열사 내에 안락서원이 있다. 지명유래는 안락서원에서 왔다. 조선시대 이곳은 동래부 읍내면 동부에 속했고, 호현리, 충렬사리, 안락리라는 자연 마을이 있었다. 이곳에 서원이 생기면서 서원 주변인 충렬사리와 안락리는 원리로 불리게 된다.

자연 마을로는 서원 마을, 염창마을, 원리, 호현마을, 화현마을이 있었다.

염창(鹽倉) 마을

소금 창고라는 이름이다. 이곳에 경상도에서 거둔 소금을 모아둔 창고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염창 마을의 위치는 동래고와 충렬사 사이에 있었다.

온천동(溫泉洞)

온천동의 지명유래는 동래온천에서 유래한 것이다. 동래온천은 삼국유사에도 기록될 정도로 오래되었으며, 재상 충원공이 장산국(거칠산국)의 온정에서 목욕을 하고 경주로 돌아갔다는 말도 있다. 온천이란 지명을 처음 사용한 것을 일제강점기 시절이다. 산저리와 정전리 일부를 합하여 온천리라 불렀던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동래온천노천족욕탕 2024년 4월

  1.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부산광역시 작성자 장길산] ↩︎
  2.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부산광역시 동래구 작성자 장길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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