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영도구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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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구 지명유래

영도구에 장소의 지명 유래를 알아보자. 영도구는 대한민국 안에서 유일하게 하나의 섬이 ‘구’로 지정된 곳이며, 한 때 20만이 넘는 인구를 보유한 섬이기도 하다. 영도대교가 놓이기 전까지는 영도는 완전한 섬이었다. 통통배를 통해 남항의 석말추로 불리는 곳으로 들어갔다. 이후 부산대교가 놓이고, 남항대교와 북항대교(이후 부산항 대교로 개칭)가 놓이면서 4개의 다리가 생겼다.

영도구 법정동과 행정동

법정동과 행정동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인지를 모르지만 정말 희한한 것이다. 두 관계를 일반인들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묘한 관계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법정동은 땅을 기반으로한 주소를 말하는 것이고, 행정동은 인구에 비례하여(정확히는 아니고 편의로) 사람들의 법적 행정을 위해 나눈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법정동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변하지 않지만 행정도는 필요에 따라 계속 변한다. 예를 들어 부산진구 당감동의 경우, 인구가 많아지자 당감3당으로 나뉘다 현재는 당감 1동과 3동이 다시 통합되어 당감3동의 행정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옛날 사람들은 당감3동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도구 법정동

남항동1가, 남항동2가, 남항동3가, 대교동1가, 대교동2가, 대평동1가, 대평동2가, 동삼동, 봉래동1가, 봉래동2가, 봉래동3가, 봉래동4가, 봉래동5가, 신선동1가, 신성동2가, 신선동3가, 영선동1가, 영선동2가, 영선동3가, 영선동4가, 청학동

영도구 행정동

남항동, 영선1동, 영선2동, 신선동, 봉래1동, 봉래2동, 청학1동, 청학2동, 동삼3동, 동삼1동, 동삼2동

영도의 지명유래

영도는 절영도에서 왔다. 절영도에서 ‘절’이 빠진 ‘영도’로 개칭되었다. 절영도는 영도에서 기른 말이 그림자가 없을 정도로 빠르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에 올려진 지명유래는 행정동을 중심으로 소개하지만 법정동과 행정동, 그리고 특별한 지명에 대해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지명에 대한 유래가 있는 한 제한 없이 소개했다.

남항동 지명유래

남항동은 남쪽의 항구라는 이름이다. 지도를 보면 남항동는 영도의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남항동은 영도의 동 중에서 가장 의미가 깊고 중요하다. 영도대교를 비롯하여 배를 수리하던 깡깡이마을, 남항대교로 이어지는 곳까지 포함하고 있다. 남항동에는 남항동과 남포동을 잇는 도선장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이곳에 배들이 드나든다. 이곳의 옛 지명은 석말추였다. 남항은 남쪽 항구란 뜻이며, 영도대교룰 중심으로 서쪽을 남항, 동쪽으로 북항으로 부른다. 예전은 북항과 영도대교 주변을 북빈이라 불렀다. 지금도 지명에 ‘북빈’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북빈물량장대체부두’

대교동 지명유래

대교동은 영도구의 법정동이다. 행정동은 남항동에 속한다. 대교동의 옛 이름은 대교통이었지만 1934년 영도대교가 개통되면서 사람들은 대교동으로 불렀다. 현지는 대교동 1가와 대교동2가로 나누어져 있다. 대교동사거리를 중심으로 대교동 1가와 2가로 나뉜다.

신선동 지명 유래

신선동은 북서부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다. 남포동이나 충부동에서 보면 힌여울문화마을 위쪽 산 높은 곳이 신선동이다. 봉래산 정산에서 보면 충무동 방향으로 내려다 보면 보이는 곳이다. 영도에서 가장 오래된 복천사가 있고, 계류천이 흐른다. 복천사 관내에 청마 유치환의 시비가 있다.

1885년 첨사 임익준이 당집의 주인이 여신선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고, 신선이 사는 곳이라 뜻으로 지은 것이라는 특이한 유래를 가지고 있다. 법정동 영선동2가, 신선동1~3가, 봉래동4가를 관할한다. 오랜 신선동에 산기슭에 영도의 수호신을 모시는 산제당 하씨당이란 당집이 있었다고 한다. 봄과 가을 두 번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하씨당은 ‘아씨’에서 연유했으며, 여자를 주신으로 보시는 당집이었음을 알 수 있다.1 현재도 봉래산산제당이 남아 있다.2

영선동 지명유래

영선동은 남항동과 신선동 사이에 끼어있는 동이다. 영선2동은 흰여울 마을과 동삼동으로 가는 절영로의 시작 기점이기도 하다. 영선동에는 영도 내에서 가장 먼저 패총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영선동패총비가 부산은행 영도금융센터 앞에 세워져 있다.3

첨사 임익준이 동행 전설상의 섬인 영주와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 기슭에 있다는 뜻으로 영선이라 지었다고 한다. 영선동은 1896년 전국을 13도로 개편할 때 지금의 봉래동과 신선동, 남항동, 대평동 지역을 묶어 영선리 불렀다. 영도라는 지명을 제외하고근대적 의미에서 영도의 가장 오래된 공식적인 마을이자 이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봉래동 지명유래

봉래동은 부산대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영도대교 북쪽(정확히는 동쪽)이며, 북빈으로 불렀던 곳이다. 현재의 봉래동과 청학동 사이의 고개깃글을 예전에는 아리랑 고갯길로 불렀다. 봉래동은 영동의 산인 봉래산에서 가져왔다. 봉래산은 일제강점기 이후 고살산이라 불렀다. 첨사 임익준이 지명을 한문으로 고칠 때 신선이 사는 곳이라 하여 봉래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청학동 지명유래

청학동은 영도의 동쪽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산을 접하고 있다. 영도구청과 보건소가 자리한 곳이기도하며, 선사시대의 조개무지가 발견된 곳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조내기 고구마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고구마는 일본에서 건너왔다고 한다. 일본에서 가져와 최초로 재배를 시도한 곳이 바로 영도 청학동의 조내기 마을이다. 청학동과 동삼동의 경계에 있는 일산배기 마을을 조내기 마을로 보기도 하지만 범위는 훨씬 넓었을 것으로 학자들을 추측한다.

청학이란 이름은 푸를 청에 학의 학자를 따서 붙였다. 해운대에서 영도를 바라보면 학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곳이 현재의 청학동이었다. 영도 안에서도 지형이 매우 가팔라서 매립도 거의 불가능하고, 대부분이 산과 언덕에 자리하고 있으며, 다른 영도의 지역에 비해 거주 환경이 열악한 편이다.

동삼동 지명유래

동삼동은 봉래산을 중심으로 남쪽에 해당되는 곳으로 영도의 끝이다. 목장원과 중리 해수욕장, 태종대가 자리하고 있으며, 국립대인 해양대가 동삼동의 조도에 자리한다. 동삼동 패총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동삼은 세 동내라는 뜻이다. 상리, 중리, 하리로 이루어져 있어서 합하여 동삼이라 불렀다. 영도 안에서 가장 완만한 곳이며, 방위사 남동을 향하고 있어,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도라는 섬이 이름 자체가 부산에서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른다는 뜻이다.

상리는 현재 상리초등학교가 있는 주변이었다. 이후 동삼초등학교 주변까지 확대되어 사용되었다. 중리는 중리 해수욕장 주변 마을이다. 하리는 동삼교회 앞 삼거리 아래로 태종대까지의 마을을 말한다. 하리선착장 주변은 수많은 횟집과 술집이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1. 이 내용은 부산역사문화대전 「봉래산 산제당과 아씨당」에서 전설과 유래를 읽어 볼 수 있다. ↩︎
  2. 도로명 주소로 ‘부산 영도구 산제당길 246’로 가야하고, 지번은 신선동3가 산4-1’이다. ↩︎
  3. 대부분의 부산 사람들은 동삼패총을 알아도 영삼패총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영도사람들도 이것을 알지 못한다. 그만큼 소개한적도 없고, 주변에 알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특별히 영도 역사에 관심이 있어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영선패총은 알지 못한다. 현재 영선팽총비는 BNK부산은행 영도금융센터 정문 앞 가로수 밑에 설치 되어 있어 눈여겨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주소> : 부산 영도구 대교동2가 1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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