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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감동(堂甘洞)
개요 및 역사
당감동은 삼국시대에 동평현의 치소가 위치했던 곳입니다. 신라시대 때는 대증현이 설치되었으며, 경덕왕 시기에는 동평현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초기까지 동평현은 독립된 고을로 남아있다가, 이후 동래부에 합병되어 동평면이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기에는 동래군 서면 당감리로 불렸습니다
지명 유래
당감동은 당리와 감무리가 합해 만들어진 지명이다. 당리와 감무리는 아래의 글을 참조 바랍니다.
- 당리: 당감동의 “당”은 “당리”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지역에는 오래된 당집이 있었고, 지금도 순조 25년(1825)에 세운 영숙사라는 신당이 남아 있습니다. 이 신당은 조선초기 동평현 시절 왜구 토벌을 위해 파견되었던 무반을 모시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 감물리: 당감동의 “감”은 “감물리”에서 유래했습니다. 감물리는 당감천의 옛 이름인 “감물내”에서 왔습니다. 여기서 “감물”은 감나무가 많은 지역을 의미하고, “내”는 시내나 하천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감물내”는 감나무가 많은 하천을 뜻합니다
- 1914년, 일제의 부군면 통폐합 당시 당리와 감물리가 합병되면서 현재의 당감동이 되었습니다
당감동의 지역적 특징
1. 자연환경
- 백양산 자락: 당감동은 백양산 자락에 위치해 있어 자연환경이 좋습니다. 백양산은 주민들에게 산책과 등산을 즐길 수 있는 자연 공간을 제공합니다.
- 당감천: 지역의 하천인 감물천(당감천)은 과거 시내가 흐르던 자리로, 현재는 동서고가로가 지나는 위치입니다.
2. 교통
- 도로망: 당감동은 주요 도로망과 연결되어 있어 접근성이 좋습니다. 동서고가로, 백양터널 등을 통해 부산 시내로의 이동이 용이합니다.
- 대중교통: 다양한 버스 노선이 당감동을 경유하여 편리한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합니다.
3. 주거 환경
- 주택지: 당감동에는 다양한 주거 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특히 백양산 자락의 주택지에서는 공기가 좋을 것이라 예상되지만, 관문대로와 백양터널을 통해 이동하는 차량들의 매연으로 인해 편차가 있습니다.
- 화장터: 과거 1957년부터 1987년까지 당감동에는 화장터가 있었으며, 현재는 해당 자리에는 개성고등학교가 들어섰습니다 .
4. 역사적 유산
- 영숙사: 당감동에는 순조 25년(1825)에 세워진 영숙사라는 신당이 있습니다. 이 신당은 어모장군을 모시는 신당으로, 조선 초 동평현 시절 왜구 토벌을 위해 파견되었던 무반을 모시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 당신목: 당감동에는 한때 “당신목”이라고 불리는 고목나무가 있었으며, 이 나무는 지역의 역사적인 상징물이었습니다. 현재는 2대째 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5. 인구와 행정
- 인구: 2023년 기준 당감동의 인구는 약 10,883명입니다. 면적은 0.87㎢이며, 인구 밀도는 12,509.20명/㎢입니다.
이와 같은 특성들로 인해 당감동은 자연과 역사, 교통의 편리함을 갖춘 지역으로, 주거지로서의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