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신화] 몰약나무 스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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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르나: 눈물과 정화의 상징, 몰약나무(Myrrh)

고대 신화 속에서 눈물로 피어난 나무, 몰약나무(Myrrh)는 단순한 식물이 아닌 인류의 슬픔, 속죄, 정화를 상징하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스미르나, 혹은 미라(Smyrna, Myrrha)라는 이름으로 불린 여성은 금기의 경계를 넘어선 비극의 인물이자, 그 몸이 나무로 변하여 몰약이라는 신성한 수액을 흘림으로써 다시 신성한 존재로 승화됩니다. 몰약나무는 이러한 내러티브 속에서 인간의 내면과 도덕적 질문을 담고 있는 살아 있는 신화적 텍스트라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몰약나무의 신화 속으로 떠나 볼까욧?

식물의 특징

  • 한글이름: 몰약나무 (영어: Myrrh tree)
  • 학명: Commiphora myrrha
  • 꽃말: 슬픔, 정화, 속죄

몰약나무는 주로 동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 건조 지역에서 자라는 소형 관목 또는 중형 키의 나무로, 가지에 가시가 있으며 회갈색 수피를 지닙니다. 이 식물의 가장 큰 특징은 줄기나 가지에서 분비되는 유액(resin)입니다. 이 유액은 공기와 접촉하면 응고되며, 특유의 향을 지닌 몰약(myrrh)으로 불립니다. 몰약은 고대부터 방부, 약재, 향료, 종교적 의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습니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만드는 데 쓰였고, 성서에서는 예수에게 바쳐진 세 가지 선물 중 하나로도 기록됩니다. 몰약나무는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있으며, 매우 건조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는 신화 속 스미르나의 고통과 재탄생의 이야기와도 상통합니다.

식물과 신화

고대 그리스 신화 속에서 스미르나(또는 미라)는 비극적인 운명을 지닌 공주입니다. 그녀는 시리아 혹은 키프로스의 왕녀로, 아프로디테 여신의 저주를 받아 아버지 테이아스(Theias)를 향한 근친상간적 욕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 끔찍한 욕망은 여신의 질투로 인한 것이었으며, 스미르나는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임신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안 아버지는 분노하고, 그녀는 도망쳐 9개월 동안 방황하다 결국 나무로 변하게 됩니다. 그녀가 나무로 변하는 장면은 고통의 절정이자 동시에 속죄의 시작입니다. 그녀가 낳은 아이가 바로 미의 신 아도니스(Adonis)입니다.

몰약나무는 이 전설 속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고통과 정화의 결실로 등장합니다. 그녀의 몸에서 흐르는 수액이 바로 몰약이며, 이는 눈물처럼 느리고 고통스럽게 흘러나옵니다. 몰약은 이후 수천 년에 걸쳐 인간의 슬픔, 죽음, 그리고 치유와 관련된 신성한 재료로 자리 잡게 됩니다. 특히 고대 이집트에서의 방부 처리, 히브리 전통에서의 제사, 기독교에서의 세례와 죽음에 이르기까지 몰약은 일종의 경계적 존재로 기능합니다. 이는 스미르나의 존재가 단순한 죄인이 아닌, 죄를 통해 신성함으로 이르는 상징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스미르나 신화는 다양한 문화에서 유사한 구조로 반복되며, 근친상간이라는 극단적 주제를 통해 인간의 금기, 죄의식, 그리고 회복의 서사를 드러냅니다. 그 중심에는 몰약나무가 있으며, 이 나무는 인간과 신, 고통과 치유, 속죄와 구원의 경계를 매개하는 식물로 기능합니다. 이로써 몰약나무는 신화적 기호이자 동시에 인류의 정신문화와 깊은 연관을 맺은 식물이 됩니다.

신화의 구조와 상징분석

스미르나의 신화 구조는 다음과 같은 고전적 서사를 따릅니다: 금기의 도입 → 욕망의 실현 → 파괴와 추방 → 변형 → 탄생. 이 구조는 단순한 이야기 구성을 넘어서 인간의 심리적·도덕적 구조를 투영합니다.

  1. 금기의 도입: 아프로디테 여신의 저주 또는 운명의 힘에 의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욕망에 휘말립니다.
  2. 욕망의 실현: 스미르나는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와 관계를 맺습니다. 이는 고대 사회의 윤리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3. 파괴와 추방: 진실이 밝혀졌을 때 아버지는 그녀를 죽이려 하며, 스미르나는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추방당합니다.
  4. 변형(메타모르포시스): 신들은 그녀를 몰약나무로 변화시킴으로써 그녀의 고통을 영속적 형태로 고정시킵니다. 이는 동시에 고통을 정화의 상징으로 전환하는 신성한 행위입니다.
  5. 탄생: 나무가 된 스미르나의 몸에서 태어난 아도니스는 새로운 생명의 상징입니다. 그는 훗날 아프로디테의 연인이 되어 미와 생명, 죽음과 부활의 상징이 됩니다.

몰약나무의 수액은 눈물과 같으며, 향기롭지만 쓰디쓴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정화와 치유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몰약은 죽은 자를 위한 방부제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생명의 끝과 새로운 시작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인문학적 의미 분석

스미르나의 이야기는 단지 충격적인 신화로만 읽히지 않습니다. 이 신화는 인간의 본능, 도덕적 한계, 그리고 죄와 속죄의 문제를 다루는 강력한 서사입니다. 철학적으로 볼 때, 스미르나는 인간 존재의 경계를 시험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죄인인가, 희생자인가? 이중적인 입장은 인간 윤리의 복잡성을 드러냅니다.

문학적으로 몰약나무는 ‘고통의 나무’이자 ‘치유의 나무’입니다. 몰약의 향기는 무덤의 향기이자 성전의 향기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삶과 죽음, 죄와 성화 사이의 긴장 관계를 드러냅니다. 스미르나의 육체가 나무로 바뀌는 과정은 신체적 고통의 은유이자, 사회로부터의 추방, 존재의 전환, 신과의 만남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합니다.

근친상간이라는 극단적인 주제를 통해 이 신화는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금기시하며, 어디에서 구원의 실마리를 찾는지를 탐색합니다. 이는 단지 고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의 인간학적 성찰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몰약나무의 존재는 그러한 인문학적 사유의 상징이 됩니다.

연관된 것들

몰약나무와 스미르나의 이야기는 다양한 예술작품과 종교의식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에서 종종 몰약을 고통과 죽음을 암시하는 도상으로 사용했고, 테오도르 제리코(Theodore Géricault)나 구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같은 화가들은 이 신화를 비극적 아름다움으로 그려냈습니다.

또한 현대 문학에서는 스미르나를 여성 주체성과 고통의 상징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몰약의 향은 여전히 고급 향수에 사용되며, 예루살렘과 아라비아 사막 일대의 몰약나무는 관광과 순례의 장소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특히 고대 교회에서는 몰약을 성유의 재료로 사용하며 신성함과 연관 짓고 있습니다.

스미르나의 도시(현재 터키의 이즈미르)는 몰약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름을 가졌으며, 신약성경의 일곱 교회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몰약나무가 단지 신화 속 식물이 아니라, 역사와 지리, 종교를 아우르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