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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면(大義面)
대의면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의령군의 면이며, 9개의 법정리, 26개 반과 17개의 행정 마을을 관할하고 있다. 인구는 1,013명(2024년 1월)이다. 면소재지는 마쌍리 4458-4에 있다.
의령군의 가장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쌍천과 중촌천, 신천천 등이 흐르는 계곡에 집들이 배치 되어 있는 형세다. 삶이 조건이 매우 열악하고, 통하는 길이 없이 칠곡면이나 삼가면 등을 통해야 행정리와 천곡리가 서로 통하는 기이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같은 대의면이지만 서로 만날 수 없는 기이한 모양새다. 왜 이렇게 분리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의면 역사
조선시대 대의면은 대곡과 모아로 나누어져 있었다. 대곡은 한실로 불렸고, 모아는 모오골로 불렸다. 모아라는 말이 좋아 보이지 않아 모의로 바꾸어 부른다. 대곡과 모의가 합하여 대의면이 되었다.
대의면 행정구역 및 지명유래
마쌍리
마쌍마을1
마쌍참재대곡(馬雙站在大谷)이라는 기록(한국지리지총서 읍지 경상도편과 영남읍지 의령편)을 보건대 오래 전부터 쓰인 지명이다. 지금의 면소재지 부근은「장승배기(장승박이)」라 하며 안골동리를「매산이」이라 부르기 때문에 장승배기 쪽보다는 매산이 쪽이 오래된 마을이다. 장승배기는 4군 (의령,합천,산청,진양군) 경계가 되는 지점이며 옛날부터 삼거리를 이룬 대로가 있었고 지금 이 면소재지는「가게터」니 「주막거리」라 불렸던 곳이며 삼거리 길가(현재 김창호씨댁 부근)에는 네 고을에서 이정표 겸 마을수호신으로 만들어 세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 새긴 목장승(木長承, 長 )이 즐비했고 또한 역참이 있었으니 역마와 함께 역졸도 딸려 있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래서 이 지역이 촌명이「장승배기」가 된 것이며 자연히 지역사람들끼리의 텃세나 소박한 갈등이 있기 마련이었다. 삼가쪽 도투마리처럼 생긴「도틀재」에서 쑥 빠진 산줄기와 「구시골」옆으로 뻗은 산줄기가 꼭 두 마리의 말이 고개를 쳐들고 마주보고 서 있는 형상이라서 두 마리의 말이란 뜻으로 마쌍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매산이」란 말은 옛날 동리 뒷산에 큰 매화고목이 있어서 매산(梅山)이 되었다고 하나 근거가 희박하다. 다른 어원으로 작은 배를 「매생이(마상이)」이라 하는데 동리 지형이 통나무배를 닮았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진주와 산청방면으로 가자면「흰재」를 넘어야 하는데 그 고개는 별로 높지는 않지만 좀 가파른데 옛날부터 사람의 왕래가 많았고 길도 매끈한데 흰옷을 입은 사람이 끊이지 않아서 언제 보아도 희끗희끗해서 흰재라 이름이 붙은 것 같다고 한다. 고개마루에「흰재새미」니「흰재우물」이란 천연옹달샘이 있었고 옆에는 큰 기목나무 세 그루가 있었다. 동리 입구에 당산과 정자나무가 있었고 버드나무가 많아서 염소가 좋아한다는「염생이골」과 뒤쪽이「매양골」이다. 현재는 18집이 사는데 의성 김씨가 먼저 자리를 잡았으며 지금도 이씨, 전씨와 같이 너댓집씩이고 정·하·신씨 등 각 성바지가 한집씩이 남았다.
중촌리
중촌마을2
대의면 소재지서 십리길이 더 되는 깊숙이 자리한 산촌, 어르신들은「모오중촌」이라고 부른다. 합천군 삼가면 땅을 한참 밟아야 하는 묘한 지역인데 조선조 고종 때 지방제도 개혁 때까진「모아(毛兒) 방(坊□지금의 면에 해당 됨)」이었다. 좀 이상한 지명인데 이 골안에 띠풀이 너무 많고 산짐승이 많아서 그런 지명이 쓰였다고 한다.
「모오골」동쪽으로는 험준하면서도 정기가 높은 자굴산이 우람하게 섰고 남북은 역시 높은 산줄기가 십리로 뻗어 있으며 서쪽만 트여 있는 유곡이다. 하지만 들어가 보면 경관이 좋고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고 아늑하고 따스한 골이다. 옛날부터 힘센 장골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서당도 여러 군데 있었고 당대 널리 추앙 받던 분들이 자주 찾고 머물기도 했던 곳이다. 언젠가는 모르지만 지명이 천하다고 모의(慕義)로 고쳤다. 자굴산 쪽에서 보자면 상촌(上村:지금의 신전, 곡소, 암하, 행정)이라 했고 그 밑이 「중땀(中村)」그 밑뜸이 하촌(아랫땀 하촌(下村)으로 불렀다는 것인데 지금은 7개 마을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다. 마을 왼쪽으로 산모롱이를 돌아 가면「산바실(산밭골, 마전)」이란 마을이 있고 마을 오른쪽으로는 맑고 넉넉한 물이 사철 마르지 않고 흐른다.
「용마지기도랑」옆의 들 이름도「용마지기들」이다. 찻길에서 마을로 가자면 1백 미터쯤에 아담한 교회가 있고 시멘트 다리가 있는데 이도 큰 바위를 이어서 만든 징검다리가 있어 일명「나드레도랑」이라고도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나들이」다리란 뜻인 듯 하다. 동네 앞들가운데는 아주 울창한 숲이 있고 숲 속에는 당산나무와「비손바구」가 삐죽 서 있다. 동신제를 지내는 당산숲이며 선돌은 선사유물인 입석(선돌)은 아니고 토속신앙의 대상으로 비손하던 돌이라 한다. 신목과 신석을 보호하는 숲이라서 주위 농작물에 피해를 끼쳐도 없애서는 않된다는 소박한 믿음을 갖고 있다. 마을 옆 동긋한 산이 동산인데 이 산에서 바윗돌이 굴러 떨어지면 사흘 안에 아기초상이 난다는 속신 때문에 사람이나 짐승이 올라가는 것을 금기하고 있다. 또「산바실」가는 길가에「돌정이」라는 큰 고목나무가 있다.
한여름 들일을 하다가 땀을 식히고 쉴참을 먹는 정자나무인데 땅바닥에 큼직한 자연석들이 깔려 있어서「돌정자」즉 석정(石亭)이란 말이 변음된 것이라 보인다. 마을 오른쪽 산자락에 길쭉한 논밭이 있는데「할바지들」이니「한바지들」로 부르고 있다. 덜렁 얹힌 높은 지대라「하늘받이(천수답)」의 와음인 것 같다. 이 동네 주위엔 여러 문화유적이 있고 대표적인 것으로「이의정(二宜亭)」「미연서원(嵋淵書院)」「숭정사(崇正祠)」그리고 목판 9백여 장이 보관된 장판각(藏板閣)과 서당이 있고 큰 사적비도 함께 있다. 조선중기 청남의 영수이자 우의정을 지내신 허목(許穆)선생이 우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저술에 몰두하던 바로 그 현장이다. 도지정 문화재(지정번호 182호)로 지정되었고 그 옆 학고정(學皐亭) 또한 고풍스런 제각이다.
마을동쪽에「열부공인거창신씨사적비」는 허속(許涑)공의 부인으로 효녀에 효부이면서 열부라 영조 때 정려가 내려졌다. 오랜 세월 풍우와 전란, 후예들의 빈곤 때문에 퇴락하여 꽃집(정문)은 철거되고 지금은 돌비 하나만 서 있다. 동네를 저만치 벗어난 한길 위「통정대부효자박공묘」그 아래「밀양박공양세효자비」가 서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음력 2월 초승이면 골안 세뜸끼리 줄땡기기(줄다리기)를 했고 모의골 전체의 잔칫날이었으나 지금은 행해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기막힌 일은 미수선생 영정을 비롯해서 유묵이며 서책 등 서너 차례 도난을 당했다. 이 마을엔 밀양 박(朴)씨가 먼저 자리 잡고 그 뒤 여러 성받이가 들어 왔다고 한다. 백호 넘던 대동이 지금은 겨우 60여 집인데 허(許), 김(金). 강(姜), 최(崔), 정(鄭)씨가 7∼8집이고 박(朴)씨가 6집, 이(□), 전(田)씨가 서너집씩 살고 있다.
천곡리
심지리
다사리
신평마을3
대의면 다사리에는 다사(多士), 죽전(竹田) 두 행정동리가 있으며 다사마을도 옛 지명으로 골한실과 새터의 두 뜸이 있다. 골한실을 요즘 와서는 안다사니 다사안골(內洞)로 부르고 있으며 조금 늦게 마을이 형성된 새터를 신평(新坪)이란 새로운 지명을 붙인 것이다. 이 마을은 「새들」이란 지명을 썼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 같은 면내에 신기가 있다보니 이곳은 신평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7골7모링이(일곱 골짜기와 일곱 모롱이를 말함)라거나 열두구비 한티재 바로 밑에 있는 동네인데 나직한 산자락 양지에 자리 잡고 있다. 새터 뒤로는 모의골로 통하는 쟁기정골이 있는데 어른들 얘기로는 그곳에 이씨 성을 가진 어느 정승의 큰 무덤이 있어서 「이정승매」로 불렀다고 하며 험한 세월을 보내면서 도굴이 되었는지 파묘를 했는지 없어졌다고 한다. 새로 형성된 집터라고 새터로 부르게 된 이곳 지명도 이젠 한실새터란 말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게 되었다. 안골과 바깥이 열댓집씩 비슷하다. 이곳 역시 김녕 김씨가 먼저 들어왔다고 하며 그 뒤 왕씨, 남씨, 공씨등 여러 성바지가 들어왔다고 한다.
행정리
추산리
신전리
하촌리
[공공기관 및 중요 기관]
대의 초등학교
- 공립
- 설립일자 1931년 9월 1일
- 주소 경남 의령군 대의면 대의로 31-6
- 학생수 28명(남12,여16, 2024년)
의령 미연서원(宜寧 嵋淵書院)
대의면에 있는 조선시대 서원이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로제585로 지정되어 있다.(2014년 9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