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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면(富林面)
부림면 개요
부림면은 경상남도 의령군의 면이다. 의령군의 가장 북쪽에 자리하고 있으면 동으로는 낙서면 서로는봉수면, 남서로는 유곡면, 남남동으로는 지정면과 닿아 있다. 신반은 합천과 창녕으로 빠지는 국도 20번 지나는 곳으로 중요한 길목이다. 백산 안희제 출생지로 독립정신이 배어 있는 곳이다. 현재인구는 2,663명이다.(2024년 1월)1
부리면 역사2
685년 신라 신문왕 5년 신이현이나 주오촌, 천주현이라고 불리다가, 742년 경덕왕 때 의상현이 되었다. 당시 의상현에는 지금의 동부 5개면 낙서, 봉수, 유곡, 지정, 부림면이 포함되어 있었다. 1018년 고려 현종 9년 신번현은 합천(강양군)에 속해졌다가 1390년 공양왕 2년에 의령에 속하게 되었다.
1895년 고종 3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부산면’과 ‘보림면’으로 갈라졌다. 1914년 읍면 통폐합에 따라 경산면의 경산, 박진 2개 동과 낙서면의 부곡동 일부와 가수면의 서들 일부를 병합하여 다시 부림면이라 하고, 경산, 대곡, 손오, 입산, 단원, 여배, 감암, 신반, 막곡의 10개 동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83년 2월 15일 합천군 적중면 권혜리와 묵방리가 편입되어 현재는 12리 28개 마을 35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다.
부림면 행정구역 및 지명유래
부림면 관할 법정리
부림면은 12리 35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 감암리 경산리 권혜리 단원리 대곡리 막곡리 묵방리 손오리 신반리 여배리 익구리 입산리
부림면 지명유래는 의령군 홈페이지 읍면소개 지명유래를 참조하였습니다.
감암리
감암마을
♠ 지명유래
감암마을은 황새골이라는 감암리 본 마을의 옛이름으로 전하며 큰바위가 있었어 감바우 또는 감암이라 칭하다 현재는 감암으로 통용되고 있음. 그리고 대밭골(죽전)으로 불리는 지역으로 미타산 가는 길목의 배고개 전설과 오광대 전설이 유래되고 있음.
♠ 마을형성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년전에 벽진이씨가 최초 마을을 이루었으며, 이후 초계정씨, 안동권씨가 들어 왔음. 신반리 현동마을과 이웃하고 있으며 96년 10월1일 신반리와 접한 일부가 신반리로 편입되었음.
♠ 유물,유적
□ 신계서원 : 초계정씨 장양공 정준의 독향서원, 고종(1868년)에 철폐령으로 처례되었던 것을 그뒤 후손이 복원함. (1861년)
□ 추원재 : 안동권씨 일가가 거주하던 곳으로 재각임(1945년)
□ 적성비 : 최씨 유적비
♠ 민속놀이,전설,민요,농요
□ 산천제 : 매년 초계정씨가 산에다 제를 지냄.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못꼴 : 신반현동에서 감암리 가는 도중의 골짜기에 있는데 저수지밑
□ 비찍걸 : 감암마을에서 약 100m쯤 동편 도로변에 위치한 최씨비(적성비)각이
있는 부근을 말함.
□ 황새골
옥동마을
♠ 지명유래
신반에서 약 1km 북쪽 위치에 있고 동오골이라는 옛 지명이 있음. 복숭아 꽃나무가 많다하여 본래 마을명이 도화동으로 칭하다가 8.15해방후 동옥동으로 개칭되었다가 동字를 빼고 옥동이라고 칭하였으며 현재까지 이르고 있음.
♠ 마을형성
감암리에 속하여 최초 오소교 옆에 마을이 형성되고 있었으며, 평산신씨가 제일 먼저 입촌하였음.
♠ 유물,유적
□ 추원제 : 진양정씨 돈재 정중수를 추모하는 재실(1975년)
□ 임창 : 임금께 보내는 특산물을 보관하던 창고
경산리
경산마을
♠ 지명유래
선사시대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옛 경산면 지역으로 뒷산의 절경이 극치를 이룬다하여 별미 또는 부미로 전해오며 일제시대 행정구역 개편시 한자어로 바뀌면서 경산으로 칭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고분도 발굴되기도 하는 지역임.
♠ 마을형성
초계정씨들의 은둔지역으로 정씨들이 최초 입성하였으나 인천이씨, 칠성이씨, 진양 정씨, 순흥안씨, 탐진안씨들의 정착지역이며, 일제시대 경산리 고분이 일본으로 유출되어 일본의 각 대학에 그 유적이 전시되고 있음.
♠ 유물,유적
소덕산성 : 경산의 안골 뒷산에 있는 성터인데 임진왜란때 곽재우 장군의 싸움터라 전해짐.
고래장터 : 무덤실에 있는 고려때의 고려장터
대상산성 : 대성산 상봉에 남아 있는 고적, 임진왜란때의 것으로 양쪽에 돌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고 성곽이 남아 있음.
낙산서원 : 정의공 송암 이노의 독향 (1735년)
경모재 : 선략장군 정 휘의 추모재각 (1975년)
♠ 민속놀이,전설,민요,농요
□ 동신제 : 정월 초여흘 새벽에 동신제를 지냄.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고분도 : 선사시대 유적지 (고인돌,선돌)
박진마을
♠ 지명유래
박진마을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과거를 보러간 박진이라는 사람의 아명을 딴 지역으로서 낙동강 하류에 위치하며 옛부터 물물교환의 나루터가 있었다. 또한 박진은 옹기, 질그릇을 만드는 곳으로 마을 전체가 수박의 윗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박,진흙(토기)이 유명해서 박진이라고 불리어 졌다는 설도 있다.
♠ 마을형성
100여년전 김해김씨가 최초로 박진마을에 입촌하였고 이후 무슨박씨인지는 모르나 박씨성을 가진 집안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으며, 40여년전에는 협천이씨가 옹기를 굽기 위해 박진마을에 들어왔음.
♠ 유물,유적
박진산성 : 임진왜란때의 산성
옹기공장 : 옹기를 많이 구웠음.
아치미 : 안씨재각
운암사 절
♠ 민속놀이.전설.민요.농요
옛날 부산 등지로 물품을 옮길때는 박진나루터를 거쳐 이동하였다.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즐목문토기 옹기터
권혜리
상권마을
♠ 지명유래
머루고개,멀이골로 전해오는 이 마을은 옛 선사시대 초계로 통하는 고개를 쉬어간다는 뜻의 유래지명으로 머루고개 상단에 해당한다하여 상권이라 불림. 그리고 대밭골(죽전)으로 불리는 지역으로 미타산 가는 길목의 배고개 전설과 오광대 전설이 유래되고 있음.
♠ 마을형성
동쪽으로는 묵방리, 서쪽으로는 합천군 초계리, 남쪽으로는 봉수면 죽전리, 북쪽으로는 합천군 적중면에 접해 있는 상권마을은 옛날 유랑자 및 귀양자가 은둔하던 장소로 이용되다 집촌으로 형성됨.
♠ 유물,유적
□ 단자 : 옛날 결혼할때 사용하던 물건
중권마을
♠ 지명유래
권혜리 유래의 머루고개 중간에 해당한다 하여 중권으로 불리며 6.25사변시 주 피난처임. 그리고 대밭골(죽전)으로 불리는 지역으로 미타산 가는 길목의 배고개 전설과 오광대 전설이 유래되고 있음.
♠ 마을형성
동쪽으로는 하권마을, 서쪽으로는 합천군 초계면, 남쪽으로는 봉수면 죽전리, 북쪽으로는 상권마을에 접해 있는 중권마을은 현재 김해김씨가 대부분 살고 있음.
하권마을
♠ 지명유래
머루가 많다하여 머루골이라 불리다가 멀이골이라 칭한데서 유래되었으며 보통 머리골로 부르고 있음. 머리고개의 아래쪽에 해당한다하여 하권이라 함. 그리고 대밭골 죽전으로 불리는 지역으로 미타산 가는 길목의 배고개 전설과 오광대 전설이 유래되고 있음.
♠ 마을형성
동쪽으로는 봉수면 천락리, 서쪽으로는 상권마을, 남쪽으로는 봉수면 죽전리, 북쪽으로는 묵방리에 접해 있는 하권마을은 선산김씨, 김해김씨, 광주노씨, 경주이씨 등 다수의 성씨들이 모여 살고 있음.
단원리
단원마을
♠지명유래
약 500여년전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박탈당한때 인천이씨인 문화시중 이장화 공이 이의 부당함을 세조(수양대군)에게 간했으나 도리어 미움을 받게되어 벼슬을 등지고 현 대구를 거쳐 낙향하여 여생을 보낸곳으로 1919년경 왜정당시 행정구역 설정때 옥고개 오동숲에 봉황새가 모여들어 서식함으로써 부자가 난다하여 마을명을 부뫼라 일컬어 오다가 최근 행정구역 개편으로 단원으로 칭하게 되었음.
♠ 마을형성
전의이씨,진양강씨의 세장으로 풍수지리학상 유명인물 배출지역으로서 은둔 기사들이 모여든 지역으로 숱한 전설이 구전돼 오던 반향이었으나 지금은 단전됨.
♠ 유물,유적
단원재 : 진양강씨 선조 여은선생과 그 동생을 추모하는 재실(1945년)
어풍제 : 단원 남쪽에 있는 재실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서제골 :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신이골 :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자지배미 : 북쪽에 있는 논(남자의 성기를 닮았다고 함)
수축마을
♠ 지명유래
유곡천의 하류지점에 위치한 수축마을은 홍수때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았다고 하여 수축 또는 물축으로 불리워졌음. 그리고 어느곳을 파도 항상 물이 마르지 않고 많이 나왔다고 전하며 물을 잘 다스리는 어느 고인의 아호를 따서 수축이라 하였다고 함.
♠ 유물,유적
돈아공 : 탐진안씨 재실(기존의 가옥을 1991년에 재실로 수리)
탐진안씨 유허비
진양강씨 정화비
♠ 민속놀이.전설.민요.농요
□ 윷놀이 : 정월대보름에 실시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앞산
□ 물축고개
율리마을
♠ 지명유래
단원지역 진양강씨가의 득세에 따라 담양전씨,인천이씨,전의이씨가 번갈아서 마을을 형성한 인위적인 마을로 밤골이라고도 부르며 밤나무 자생지역으로 인천이씨가의 이이(율곡) 후손들의 경모사상에서 전해오는 지명임.
♠ 마을형성
벽진이씨,전의이씨,진양강씨,여양진씨등의 선대가 이조시대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한 지역으로 진양강씨 재각과 인천이씨,전의이씨의 유허비가 산재한 지역으로 씨족사회의 전통이 남은 지역이며, 이이(율곡) 후손들이 당쟁사화의 은신지역으로 전해오는 율리 마을은 남쪽으로는 입산리, 서쪽으로는 막곡리, 서북쪽으로는 신반리와 접해 있고 마을방향은 입산리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인천이씨를 주축으로 여러성씨가 모여살고 있음.
♠ 유물,유적
□ 학사평
□ 진양강씨 재각
□ 인천이씨 유하비
♠ 민속놀이.전설.민요.농요
□ 지신밝기 : 정월대보름이면 집집마다 지신밝기를 행했다.
□ 밤골노래 : 가사 미상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송촌
□ 홍도낙진
□ 여우고개
□ 남방골 안골
대곡리
대곡마을
♠ 지명유래
대곡마을은 주위에 큰산이나 큰골짜기도 없는데 대곡이란 지명은 당치 않는데 아무래도 옥천부원군 설계조의 아호를 빌어 한실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어 대곡으로 불리어진것 같다. 그리고 한실은 천주교가 인근에서 처음 전파된 지역으로 주교소속의 성지로 전해오고 있음.
♠ 마을형성
동남쪽으로는 오소마을, 서쪽으로는 여배리, 북쪽으로는 낙서면 아근리와 접해 있는 대곡마을은 최초로 안동김씨가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며, 천주교가 처음 전파된 성적 지로 전해옴.
♠ 유물,유적
안동김씨 제각
천주교 성적비
♠ 민속놀이.전설.민요.농요
□ 상여가 앞소리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망깨만댕이 : 오소마을 동쪽이며 낙서면과 경계되어 있는 산봉우리로 일제 초기 세부 측량의 기준점을 정하기 위한 쇠봉을 망깨로써 박았다고 함.
□ 한실큰새미(금구디기새미) : 한실에 있는 우물,바위틈에서 나오는데 수량이 많음.
□ 개장골 : 대곡마을진입로 부근의 개를 매장하던 장소
오소마을
♠ 지명유래
유곡천, 신반천, 유학사 주변에 위치한 오소마을은 낙동강 범람지역으로 오지산의 밑둥지 마을로 형성되었다하여 오소라 일컫음. 또한 烏所(까마귀집)란 까마귀가 날아 다니며 울었던 산허리 부근에 최초마을이 있었다가 지금의 위치로 이주하였다고 함.
♠ 마을형성
여양진씨, 김해허씨등 여러 성받이의 세장으로 전해오며 길조의 새 까마귀의 이름을 딴 마을로 전해옴. 봉림대군의 북벌(청)후 벽진이씨의 귀양한 후손이 마을을 형성 하였다는 설도 있으며 또한 일설에는 최초 능성구씨가 자리를 먼저 잡고난 다음에 여타성씨가 이어졌다 함.
♠ 유물,유적
봉림초등학교
봉화터
♠ 민속놀이.전설.민요.농요
□ 윷놀이 : 매년 이월초하루에 실시
□ 지신밟기 : 정월대보름때 실시, 상조회의 모임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 동신제 : 정월초에 택일하여 당산에 제축관이 선임되어 동신제를 올리고 있음.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부형덤 : 부엉이 모양으로 지형이 생겼다는데서 유래
막곡리
막곡마을
♠ 지명유래
옛날 어느 집안에서 부모의 상을 당하여 마을내에 묘지를 묘셨다고 하며 언제 누구의 묘지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시묘밑에 막을짓고 삼년상을 지낼때 기거하기 위하여 움집을 지었는데 그 움집의 형태가 유래되어 막집,막실로 불리워졌으며 진양정씨의 집촌이라 전한다.
♠ 마을형성
막곡마을은 남으로 유곡면 세간리, 덕천리와 접해 있으며, 국도 20호선을 기준으로 상막곡, 하막곡으로 나뉘어져 있다. 300여년전 진양정씨가 최초로 입촌하여 마을을 이루었고 그 후 순창설씨,안동권씨 순으로 정착하였으나 지금의 신반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으며, 담양전씨는 6.25사변후 봉수면 직금마을로 피난하여 현재는 진양정씨가 대부분 살고 있음.
♠ 유물,유적
□ 망성정 : 인공 두필과 장공 영익 두사람을 추모하는 장소. 현재 소실되었음.
♠ 민속놀이.전설.민요.농요
□ 달집태우기 : 정월대보름때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행하지 않음.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새땀 : 상막곡 동쪽에 있는 새로된 마을
□ 생이골양지 : 웃막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챙이덤산 : 안막실 북쪽에 있는 산, 챙이덤이 있음.
□ 홍도고개 : 막곡에서 신반으로 들어가는 고개, 옛날부터 홍두낙진이라 부르며
이곳에 명지가 있다고 하여 산서를 연구하는 지사가 찾아와 홍두낙진을 탐지
□ 안공동묘지 : 상막곡에 있는 공동묘지
□ 갓골 : 윗막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
□ 구시골 : 하막곡 남쪽에 있는 골짜기
묵방리
묵방마을
♠ 지명유래
통일신라시대 묵(서예)을 자영하는 문필사우의 후예가 자리잡았다는 유래속에 묵방으로 불리고 있음. 벼루를 뜻하는 지역으로 현재 학계 연구대상 지역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부터 전해오는 사찰 발본지역임. 묵방 본마을과 칠공 2개 마을로 이루어졌으며, 칠공은 옻이 많이 자생한데서 유래된 지명이고 1982년 합천군 적중면에서 우리군 부림면으로 편입되었음.
♠ 마을형성
최초 탁씨가 입촌하였으며, 동쪽으로는 여배리, 서쪽으로는 합천군 초계면, 남쪽으로는 감암리, 북쪽으로는 합천군 적중면에 접해 있는 묵방마을은 부림면에서 가장 오지마을에 해당함.
♠ 유물.유적
□ 미타산 봉화
□ 유학사 : 고려 고종 2년에 건립되었으며 무학대사가 절터를 선정한데서 유래
손오리
구산마을
♠ 지명유래
구산마을은 마을앞에 유곡천이 흐르고 뒷쪽으로는 산으로 막고 있는 배산임수형 자세를 갖춘 곳이며 먼 옛날 입산쪽에서 산이 엉금엉금 기어오고 있는 것을 목격한 아낙네가 “저기 산이 물을 건넌다”라고 소리치자 산이 그자리에 멈춰 버렸는데 그형국이 거북이와 닮았다고 하여 구산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는 설과 구봉정의 아명을 따서 구字가 되었다는 설 그리고 마을뒷산의 유림들 휴양소 명칭인 구산을 땄다는 일설 등 여러설이 분분함.
♠ 마을형성
손오리와 경산리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구산마을은 탐진안씨가 영산에서 이주한 지역으로 인천이씨,전의이씨,탐진안씨,초계정씨의 은둔지역으로 기인 이사들이 박진 아치미 뒷산의 정기를 탄 명촌이며, 구봉정,미동 안선생 기념비 등이 세워진 마을로 여러성씨들이 마을을 형성함. 최초 입성자 성씨 분포를 나타내기가 어려움.
♠ 유물,유적
구산정사 : 헌납공 안 도의 11세손 태봉 안경서의 휴식처 (1840년경)
심수재 : 탐진 안성문의 제사를 모시는 재실 (1940년대)
이절당 : 이만구선생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1915년경) 이인로선생 추모비(1992년)
♠ 민속놀이.전설.민요.농요
□ 모찌기노래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강씨 유허비
난동마을
♠ 지명유래
난동마을은 금란계 성씨들의 비밀집합 장소로 국난을 피하기 위하여 17개 성씨들의 집회장소로 모여들었다 하여 난동이라 불리워졌다는 설과 임진왜란 당시의 축성터와 초계정씨,전의이씨 등 여러 성씨들의 유적지로 전해오는 전설도 있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는 마을이라고 하여 煖冬이라는 지명이 변천되었다고 하여 몇차례 온천수 시추를 하였다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온천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 마을형성
탐진안씨의 최초 거주지역으로 300여년전 어느 스님이 탐진안씨가 입산으로 옮겨감을 권유해 탐진안씨가 입산으로 이주함으로써 이 마을에 여러 성씨들이 집단촌을 형성함.
♠ 유물,유적
□ 탐진안씨 유허비
♠ 민속놀이.전설.민요.농요
□ 마을 앞산이 높아서 여자중에서 큰 인물이 난다고 함.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꾀꼬리덤 : 난동 안산에 있는 덤, 꾀꼬리모양으로 생겼음.
□ 가래실골 :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 가막골(가막실골) : 난동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손오마을
♠ 지명유래
골짜기가 솔다(좁다)하여 손오골이라 불리는 손오마을은 마을의 형태가 솥가마를 걸어놓은 형상과 같다하여 가마실골이라고 불리우는데 약 100여년전 마을명칭을 손오리라 칭했다. 그리고 자연생태학적인 희귀식물 풀뿌리가 발견된 지명을 따랐다는 촌로들의 일설도 있음.
♠ 마을형성
약 550년전 여양진씨가 마을 최초로 들어와 골짜기 양면에 우거진 칡넝쿨을 제거하고 자리잡았으며, 이후 타 성씨가 들어와 지금의 마을을 형성
♠ 유물,유적
□ 원모재 : 경주김씨 남두를 추모하여 후손이 건립(1960년대)
♠ 민속놀이.전설.민요.농요
□ 마을 앞산이 높아서 여자중에서 큰 인물이 난다고 함.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치덤바우 :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빗물이 치덤바우 밑을 지나게 되면 물이 사라져
버림.
□ 바람재 : 손오골 북쪽에서 낙서면으로 가는 고개
□ 20여년전 한 지질학자가 측정한 결과 대평들(마을앞 들)에 창녕 부곡온천의
주류가 흐르고 있다고 전함.
신반리
신반마을
♠ 지명유래
선사시대 화전민들이 촌락을 형성한 분지형의 지형이다. 신라시대 백제와의 전투에서 호국불교가 성행하여 인근에 유학사,대동사,명석정 부근의 절터가 있다. 풍수지리학상 오지산이 위치한 곳에 다섯성씨가 집촌을 이루었으며 신이현,신번현으로 불리우다 일제시대 항일사상 유배지역으로 신반이라 일컫게 되었고, “새롭게 번영하라 “는 뜻을 가지고 있음. 신반리는 일반적으로 현동,대문동,서동1구,서동2구,중동 ,동동의 여섯개 마을로 구분되고 현동이라는 명칭은 옛날 신번현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유래되었고, 대문동은 마을에 큰 대문이 있었다하여 그렇고 타동은 대부정 뒷산 본 주류인 오지산을 중심으로 남쪽은 중동,동쪽은 현동,북쪽은 서동이라 했다.
♠ 마을형성
부림면의 중심 소재지로서 6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신반마을은 병자호란 당시 권씨 집안의 풍수지리설(거택)에 의해 서동에 안착하여 지금의 대문동 앞을 지나던 내천을 현 신반천으로 물줄기를 돌린 후 신반마을을 형성함.
♠ 유물,유적
명석정 : 각제 권삼현이 후학을 교육하던 곳으로 현재 명석정 舊屋은 봉수면 삼가리에 위치하며, 신옥을 서동에 건립함.
꽃밭사랑 : 중동에 자리잡고 있는 정각. 현재 소천정으로 불리우며 80여년전(1915년) 부호 장남익이 세움. 냉천이 있음.
화수재 : 안동권씨 덕암파 종실(1850년경)
송림지 : 죽촌 권사학이 사재를 희사하여 풍수지리설에 따라 조림과 연못을 만들어 동리의 미관을 아름답게 함(188년경)
동화재 : 절총장군 권덕중(호 매죽헌)이 창립하여 후학 강습소로써 여러 유생을 교육하던 곳(1779년)
옥련암 : 동동에 있는 암자로 합천 해인사 백경화가 창건하여(1937년) 근래까지 전해오다 심서운대사가 1951년 중수, 현재 송암사로 개칭.
저지소 : 세종때 한지를 관장하던 공공단체기관으로서 박헌양집 부근임
신번현: 현감이 계시던곳. 현 공약국 집터.
대부정 : 병조찬서 설계조공의 은둔지역. 거문고의 유래지역으로 봄.
창열각: 서동소재,통정 대부 김승서의 처 숙부인 설씨 정려각.
선압골 : 신반중학교(현 신반상고)옆 권씨문중 음수제에 위치한 선돌로 대문동과
서동간 분쟁이 일어난 지명이며 신반상고 건립시 부주의로 선돌이 없어짐.
선압수 : 선녀들이 목욕한곳(전설유래 지역)
유림지 : 조선말기 일제시대의 역사를 가르쳤던 서당. 의숙전신. 현재 현동에서 신반공원 가는 길목에 위치.
생이덤 : 상여를 보관하던곳. 송암사 부근
활터 : 궁도 연습장. 현 우재수산자리를 말함.
신계정사 : 대부정 사랑채의 촉계군수 설중의 후학강습소.
선압정 : 유림들의 모임장소. 현 장모님 통닭집 자리에 있었으나 현대사의 문명속에 사라짐. 동형전신 : 신번현 금융기관의 효시. 현 유춘도씨의 집터.
한지조합연구소 : 한지조합을 창설 하여 조합원의 친목, 이윤을 추구하던 곳으로 초대 조합장에 정응진씨였으며 현 대동 농기계 자리에 있었음.
♠ 민속놀이,전설,민요,농요
□ 줄다리기 : 음력 2월 1일 동네별 줄다리기 대회, 부림소방대 주관
□ 축구대회 : 3.1일 기념 리.동별 축구대회. 신반조기회
□ 면민위안 콩쿨대회 : 8.15면민 노래자랑. 부림교 회별 동기회주관(53회 주관)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오지산 : 손가락 다섯형태의 산턱
□ 챙이덤 : 신반 6성족보가 보존된 지역.몇년전 개방되었음. 옥련암 부근
□ 비시골 : 감암리에서 창골방면 산기슭에 있으며 옛날부터 비를 세운 산소(묘)가
많이 있었다고 전함.
□ 배나무징이 : 신반리 현동과 감암리에 접한 곳이며,옛날에 큰 배나무가 있었다고 함.
□ 서제골 : 중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서난골짝 : 현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옥천대 : 신반공원쪽의 대밭.권난장군의 전승지역(임란시)
□ 옥련암 : 송암사라 불리는 사찰
□ 안산 : 송암사 뒷쪽산
여배리
상여마을
♠ 지명유래
미악(불교의 아미타불을 나타내는 존칭)의 윗쪽으로 보는 유래로 상여라고 불림. 묵방(문방사우)의 상에 해당한다하여 상여라는 일설도 있으며 불교적 유래가 많은 지역임.
♠ 마을형성
상여마을은 동쪽으로는 하여마을, 서쪽으로는 묵방리, 북쪽으로는 합천군 적중면, 남쪽으로는 익구리와 접해 있으며, 여양진씨가 입촌하여 살고 있음.
♠ 유물,유적
석천재 : 여양 진씨 문중 재실 (1940년대)
여강재 : 처사 진명주의 재각 (1900년경)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상여저수지 : 상여 남쪽에 있는 저수지, 1947년 준공
하여마을
♠지명유래
미악(불교의 아미타불을 나타내는 존칭)의 아래쪽에 위치하였다 하여 “하여”라 불리움.
♠ 마을형성
여배리 하여마을은 동쪽으로는 대곡리, 서쪽으로 상여마을, 북쪽으로는 합천군 적중면, 남쪽으로는 익구리와 접해 있으며, 합천이씨가 집촌을 이루어 살고 있음
♠ 유물,유적
□ 여산재 : 증좌승지 함안 조준남과 그의 아우 영남과 아들을 추모하기 위한 곳
□ 당산정 : 동계 축원을 드리는 곳
♠ 민속놀이.전설.민요.농요
□ 지신밟기 : 정월대보름때 실시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왕재 : 하여 남쪽에 있는 산
□ 큰땀 : 하여마을 중심지역
□ 새땀 : 하여마을 입구부근으로서 가옥들이 뒤늦게 들어섬
□ 뒷땀 : 하여마을 위쪽지역,유촌이라고도 부름
익구리
익구리 익구 마을
♠ 지명유래
옛날 거북이가 마을에 들어 왔다고하여 익구 또는 이구라고 전해옴.
♠ 마을형성
벽진이씨, 개성왕씨 집촌으로 두가문이 정착하여 말경을 휴식처와 강학소로 만든후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해옴.
♠ 유물,유적
□ 구익재 : 개성왕씨 동양군 29대손 관희가 익구리에 정착한 말년의 휴식처(1954년경)
□ 식사당 : 벽진이씨 동포 이원갑이 말년에 매화를 키우며 보낸 곳(1945년)
구월마을
♠ 지명유래
월전(月田), 달밭이라 불리우며 익구리의 제일 상단에 위치하고 있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원분지임.
♠ 마을형성
초계지역 은둔인들의 휴식처로 전해오며 초계정씨가 최초 입촌한 지역으로 평산신씨들의 세장으로 전해옴. 임진왜란 당시 권율, 이순신장군의 지령지세지역의 요새화로 중요한 지역임.
♠ 유물,유적
□ 수파 안효제 묘소
♠ 민속놀이,전설,민요,농요
□ 정월대보름 : 지신밟기, 달집태우기등이 있으나 매년 행하고 있지는 않음.
□ 당산제 : 매년 마을입구에서 지내고 있음.
♠ 풍수지리 및 주요지명
□ 꿍꿍바우 : 월전마을과 합천군 적중면 사이에 있는 바위로써, 사람이 올라서면 꿍꿍 소리가 남. 현재는 소리가 나지 않음.
□ 미타산 : 구월 북쪽에 있는 산, 임진왜란때의 봉화터가 있음.
□ 배고개 : 구월서쪽에 있는 골짜기, 천지개벽때 배를 메였던 골짜기라 함.
□ 달밭고개 : 상여마을에서 월전가는 고개
□ 필봉 : 구월 남쪽에 있는 산
입산리
입산마을
♠ 지명유래
입산(□山)마을의 원래 한자 지명은 설산(雪山, 설뫼)인데 쉬운 토박이말로는 「설미」라고 불렀고 큰 도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있는 마을이 경산(景山, 볕뫼)인데 역시 쉽게 부르면서 「별미」라고 해 왔다. 두 마을은 안씨와 이씨, 정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는데 마을이름을 두고 어느쪽이 좋다거니 하면서 갈등을 빚어 왔다. 설미는 눈 온뒤의 산이 아무리 보기좋다해도 햇볕이 나면 녹아 버리고 마는 것이니 경산이 좋은 이름이라는등 부질없는 실랑이를 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설뫼마을 사람들이 눈(雪)대신 꼿꼿이 서다(立)라는 글자로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 마을특징
약 450년전(명종9년) 임란직전(1,550년경) 터를 잡고 세거(世居)한 탐진(耽津)안씨 집성촌으로 연육세(□世) 8효자(八孝子) 정려를 받은 효행의 가문으로 시작하여 임란공신이자 중시조이신 지헌(止軒) 안기종 의병장 이후 근세(近世) 조선말부터 해방이전에는 독립유공자 세분을 비롯하여 제헌의원 등을 배출하였고 초대 문교부장관도 나신 교목세가(喬木世家)이자 유서깊은 마을로 전통 한옥이 즐비한 부촌이자 명문 고촌이었고 또한 개화의 물결이 가장 먼저 들어온 개명마을이라고 알려져있다.
♠ 마을형성과정
입산마을에는 최초에 청도김(□)씨가 살았다고 하나 약 600년전 관향조(貫鄕祖)이신 탐진안씨 시조가 개성 장단에 사시다가 이성계 역성혁명(易性革命)때 창녕 영산으로 피난 하였으며, 다시 서울에서 3대로 관직에 봉직하다가 1,500년초에 경산 안골(內谷)로 이주하셨고 1,600년초에 한 고승의 예언에 쫓아 길지로 알려진 입산으로 이주하여 10대로 종가(宗家) 천석지기 부자집안으로 대를 이어온 마을이다.
♠ 유물유적
(1)효행정려(孝行旌閭)
파조 헌납공이하 연6세 8자손 모두의 정려와 대를 건너 효자, 열부 도합 10분의 효행정려각으로 재호를 초기 7효 정려였기에 칠효각으로 되어 있었지만 사실은 팔효각(八孝閣)이다.
(2)이충각(移忠閣)
임란당시 곽망우당과 함께 의병장으로 활동하신 18장중의 한분으로 충익사에 봉안되신 지헌(止軒)안기종(安起宗) 의병장의 유허비각 이다.
(3)건국유공자유적비(建國有功者遺跡卑)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서받으신 수파 안효제 송은 안창제, 백산 안희제(예정) 선생의 공적비 건립등 앞으로 계속 충과 효행비를 건립할 곳이라 탐진안씨 문중의 효충원(孝忠園) 이라 부르고 있다.
(4)상로제(霜露齊)
탐진 관향조의 파조 헌납공 재각으로 백산선생께서 1910년 사립 창남학교를 설립 운영하였던 유서깊은 곳이다.
(5)고산서당(高山書堂)
영남의 구학 본산으로 270여년전에 설립한 곳이며 접장 유치명(□致明), 이진상(□盡相) 공이 강학하였던 곳으로 수파 송은, 백산선생등 안씨 문중 자제들과 부근사람들이 수학하던 곳이다.
(6)지헌고택(止軒古□)
입산마을 입향조이신 지헌공의 고택으로 10대를 이어 천석을 하신 20대 대종가 집이다.
(7)백산생가(白山生家)
지방문화재 제193호로 지정된 백산 안희제 생가이며 별도 인터넷 홈페이지에 관리 되고 있음.
(8)수파정(守波亭)
1883년 3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수찬 및 흥해 군수를 역임후 독립유공 으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으신 수파 안효제 추모 정사이다.
(9)송은정(松隱亭)
1883년 18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용양위 사가를 하신후 만주 망명지에서 독립유공으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으신 송은 안창제 추모 정사이다.
(10)안호상박사 생가(한뫼생가)
초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하셨고 국내 철학박사 1호로서 사후 의령출신으로 최초의 사회장으로 국립묘지에 안장 하신분의 생장지다.
(11)의암생가(宜庵生家)
설산공의 아들이신 의암 안덕문의 생가로 의암문집 3책 1질의 제본 목판 150 여장이 전해지고 있다.
(12)근산생가(槿山生家)
의령출신 재헌국회의원이시며 안호상박사의 사촌이신 안준상(安駿相) 전의원이 생장하신 생가이다.
(13)만세공원(萬歲公園)
마을입구 버스길에서 마을로 가는 중간 논들가운데 큰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곳이 기미년 만세를 불렀던 자리라 그 뜻을 기념 하기 위하여 세운 나무인데 수령 80년을 헤아리고 있으며 지형은 농로 개설과 경지 정리로 들 복판이 되어 버렸음.
♠ 이어지는전통계
(1)금란계(金蘭契)
1629년 인조 7년에 인근마을 유지 22명이 모여 마을 자치규정인 환란구휼과 함께 상부상조하는 향약과 같은 동안(洞案)을 만들어 서로 도우며 살자는 취지로 결성되었으며 12권의 문서와 금란정(경산마을 소재)이 있으며 매년 음력 11월 15일이 계일이다.
(2)동락계(同□契)
1937년 의령동부 4대 문중(안동권씨, 의령남씨, 탐진안씨, 벽진이씨) 120분외 11문 28분 도합 148분의 지역유지분이 세의(世誼)를 돈독히 하기 위해 모인 친목단체
(3)입춘계
♠ 특산물 : 양파
♠ 풍수지리
부림면 소재지에서 약 4km쯤 남쪽으로 떨어져 있고 유곡천이 경산, 구산, 난동 등의 사이를 두고 서남쪽에서 동북간으로 흐르는 역수(역류)의 특이한 지역으로 대충신 아니면 역적이 날 것이라는 풍수지리설을 뒷받침하듯 역사상 큰 자취를 남긴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으니 애국지사 안효제, 안창제, 안희제선생등 세분 항일 독립운동 유공자를 비롯하여 제헌의원 안준상님 초대 문교부장관 안호상 박사가 나신 곳으로 1,700년초에는 설산제(雪山齊)라는 고산서당(高山書堂)을 지어 많은 석학과 인재를 배출하였으며 백산 안희제선생의 주선으로 1910년 사립 창남학교(創南學校)를 지금의 상로제(霜露齊)에 세워 경남에서 최초의 신학문 사립학교를 운영하기도 한 유서깊은 마을이다. 입산마을 뒷산을 북쪽으로 좌청룡, 남쪽으로 우백호로 칭하며 좌청룡 끝부분 바위에 설산동문(雪山洞門)이라는 음각된 암각문 표식이 있고, 우백호 끝부분 바위에 범눈깔(범눈알) 바위가 있어 우백호라 하였으며, 동리 앞 마주보는 산이 기러기산으로 기러기 목 끝부분에 꾀꼬리 바위가 있어 경치를 더해주며 역류(역수)하는 유곡천의 하류부근에 장풍수구의 비보(裨補) 차원의 숲이 경지정리와 도로개설 등으로 없어진 것이 아쉬울 뿐이며 동리 뒷산 중턱에 백산 산소가 있고, 고산 서당 부근에는 장군샘이라는 옥천(玉泉)이 2003년 매미 태풍의 사태로 덮혀버린 것을 2008년 문중에서 입산문화역사마을 조성시에 복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