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수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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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면(大口面) 수동리(水洞里)

개요

수동리는 대구면의 면소재지가 자리학 있으면 대구 중학교와 농협 하나로 마트 등이 자리하고 있는 실질적인 대구면의 행정, 교통, 생활의 중심지다. 하지만 여느 시골처럼 한적하고 조용하다.

강진군 행정지도
강진군 행정지도

수동리 관할 자연 마을

  • 수동(水洞) 마을

지명 유래

수동(水洞)

수동의 옛 이름은 석수동(錫水洞)이었다. 부르기 귀찮아서 일제시대 수동으로 불렀다고 한다. 해방후에 석수(石水), 수곡(水谷), 양리(兩里)로 분할 했지만 4년 후에 다시 수동으로 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수동에 유독 물과 관련된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위키백과 소개되는 수동은 대부분 물 수를 사요하지만 춘천시 남산면 수동리는 수(壽)를 사용하고 있다.[위키백과 수동리] 수(壽)를 사용하는 곳을 대부분 향교나 사찰 등과 관련이 있고, 물 수(水)를 사용하는 곳은 그 지역에 물이 많거나 우물이 있을 때 사용하고 있을 경우가 많다.

수동이 왜 수동인지 기록된 곳은 단 한 곳도 보이지 않는다. 대구면 용운리에 있는 신라시대 사찰인 정수사(淨水寺)에서 오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천태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정수사와 항동마을을 지나 수동마을 옆을 지나기 때문이다. 물론 추측일 뿐이다.

백사 마을

백사 마을은 두개로 갈라져 있다. 하나는 수동리로, 다른 하나는 사당리로 들어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쪼개기다. 난 당연히 한 마을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했을까? 실제로 마을로 내려가 보면 사당리의 백사나 수동리의 백사 모두 동일한 ‘백사마을’이다. 참으로 기이하도다????

하여튼 백사 마을은 행정구역사 사당리로 들어가 있으니 사당리에서 다룬다. 백사는 삼국시대부터 강진 도자기를 실어 나른 포구였을 것이라 향토사학자들을 추측하고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외 지명들]

작은 범골

강진 여택정

역사와 인물

윤가현

대부분의 사람들을 거의 알지 못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과 해방 후 보도연맹 사건을 알고 있다면 수동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알게 된다. 그 중심에 윤가현이 있다. 수동리는 ‘강진의 모스크바’라 불려질 만큼 사회운동에 진심이었다. 친일파가 다시 득세한 경찰 세력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기회를 틈타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수동리의 27명을 총살했다. 이 부분은 후에 따로 다룬다.1

  1. 출처, 호남학산책, 비운의 사회주의자 윤가현
    강진일보,20200326, “33. 일제강점기 강진농민운동과 사회주의자 윤가현(尹珂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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