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 마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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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량리(馬良里)

개요

마량면의 지명 기원이 되는 마량리는 면소재지가 있는 곳이며, 일본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만호성이 설치된 곳이다. 삼국시대부터 제주도에서 말이 쉬었다 가는 곳이라 마량으로 불렸다고 한다. 고금도와 금일도 등으로 가는 배가 오가는 곳이었지만 고금도로 이어지는 연륙교가 완공되면서 급속한 쇠락을 가져왔다.

행정체계

마량리 역사

마량리는 마량면과 역사를 공유한다.

1981년 대구면 마량출장소 설치

1989년 대구면에서 분동하여 마량면으로 승격

마량리 지명유래

마량(馬良)

마량이란 지명은 마량리라는 구마을 이름에서 왔다. 그렇다면 마량이란 지명은 어디서 온 것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제주의 말을 한양으로 가져가기 위해 마량에 내려 쉬어가게 했다는 전설?에서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들어 여러가지로 조사하면서 마량과 제주간의 교역은 거의 없었고, 제주의 말이 마량으로 오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마량의 옛 지명은 마양(馬梁)이었다고 한다. 마양은 말의 징검다리란 뜻이다. 현재의 마량(馬良)은 좋을 량, 어질 량으로 쓰고 있다. 말에 묵었던 곳은 현재의 원마가 아닌 숙마이며, 당시 원포가 큰 항이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말이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와 마량(원포)간의 뱃길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굳이 마량에 머물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은 향토사학자들의 의견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제주가 아닌 고금도나 청산도 등을 오가는 뱃길이지 않았을까 추측을 한다.

마량소재지가 있는 곳은 원마로 불리던 곳이다. 그런데 지도상에는 마량1구로 나오고 강진군청 홈페이지는 원마1구로 나온다. 무엇이 정확한지 알 길이 없다.

충남 서천에 동명인 마량진이 있다. 이곳은 최초의 성경전래지로 알려진 곳이다.

원마(元馬)

600년 전에 경주양씨가 처를 잡아 마을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그 전에도 일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인종때(1545년) 수군만호가 설치되면서 마을형태가 재정비 되었다. 마을 뒤로 보이는 산이 말의 형모습이며,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하여 원마라 불렀다.

원마에는 아직도 마도진성의 벽이 일부 남아 있다. 사람들이 벽을 헐고 집을 지었기 때문에 대부분 무너졌지만 약 100m 정도 남아 있다. 전체 위에서 보면 성벽이 말발굽형태로 되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수인(修 仁)

현재는 수인리로 분리?했음

서중(書中)

서당이 있던 마을이란 뜻으로 서중이라 하였다. 어느 명사가 장군봉 중턱에 서재를 짓고 여러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고려 충선왕 때 서당이 옮겨지녀서 한양조씨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당이 있던 마을이라하여 서재동(書齋洞)이라 부르다, 중촌을 합하여 서재동과 중촌에서 한자씩 가져와 서중이라 하였다.

신마(新馬)

예전에는 마량리에 속하는 곳으로 따로 구분되지 않았다. 현재 신마는 마량에서 바닷길로 넘어오면 고금대교로 이어지는 터널을 지나면 마을이 시작된다. 숙마와 하분 사람들은 이 길을 지나 바닷길을 타고 하분으로 갔다. 이곳 사람들이 유난히 험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괴롭하고 돈을 뺏는 일이 잦아 주변 마을에서 싫어 했다.

신마 강진항

신마 앞은 예전부터 작은 항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10여년 전에 강진군에서 신마항을 전면적으로 개편하고 넓혀 이름을 ‘강진항’으로 바꾸었다. 마량항 앞바다는 옛부터 수심이 깊기로 유명하다. 처음 신마항을 개발할 때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을 꿈꾸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목포에 이미 큰 여객터미널이 있고, 해남 우수영에도 있는데 굳이 이곳에 올 이유가 없지 않는가. 현재는 아무런 건물도, 배도 정박하지 않는 방치된 항이 되고 말았다.2

2023년 7월 113일자 중앙일보 기사에 의하면 이곳은 250억원이 들어간 곳이지만 선박이 오가는 주 항로에 양식장 허가를 주면서 선박이 다닐 수 없게 된 것이다. 2017년 10월 8일 3,000톤급 화물선이 첫 취항을 했으나 21일만에 운행이 중단되었다. 지자체별로 설정된 어업권 해역을 피하기 위해 ㄱ자 운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3

동령재

현재 영동삼거리에서 마량119로 넘어오는 길은 동령재로 불렸다. 아직도 옛날 사람들은 동령재라 부른다.

고금대교

마량과 고금도가 이어진 연륙교이다. 2007년 6월 29일 개통되었다. 고금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고금도를 비롯한 신지도, 약산도, 생일도, 금일도는 마량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갔다. 하지만 고금대교가 생기면서 마량에 머물 이유가 사라졌다. 이후 마량은 급속도로 쇠락한다.

마량항에서 바라본 고금대교

  1. 일부 자료에는 수인마을이 포함되어 마을이 5개로 소개되지만 현재는 수인마을은 수인리로 따로 구분하며, 마량리는 네 개의 마을 이다. ↩︎
  2. 광주문화방송, 20160310, “강진, 신마항 준공은 했지만 텅텅 빈 항만↩︎
  3. 중앙일보, “250억 퍼부은 강진항, 7년째 놀린다…딱 3주만 배 다녔던 이유 [영상] [2023 세금낭비 S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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