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 영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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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리 (永東里)

개요

영동리는 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의 법정리다. 옛 지명은 안경리였다고 한다. 조선말기 산동으로 부리다 일제시대 영동으로 불렸다. 주변이 모두 산으로 둘러 있으며, 1978년 영동 저수지가 만들어졋다. 산동마을 동편이 돗구재를 지나면 상흥리 상분 마을이 나온다.

행정체계

강진군 행정지도
강진군 행정지도

영동리 지명유래

산동(山東)마을

500년 전에 성종때 해남윤씨가 터를 잡았다. 주변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 형태다. 처음에 산속이란 의미로 산동으로 부렸다. 해방 후 영동으로 칭했다. 1986년 옛 이름 찾기를 통해 산동으로 개편한다. 영동은 법정리로만 남긴다.

산동의 옛이름은 안경리(翫景里)였다고 한다. 마량의 동령재에서 ‘큰터’를 바라보는 마을 전경이 아름답게 보여 그렇게 그렇게 불렸을 것으로 추측한다.

산동마을 별신제
  • 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 마량영동로 344-33

산동마을에는 변신제가 내려온다. 별신제는 음력 정월 14일 저녁 10시 정도에 지낸다. 일제강점기 때는 금지 되었다. 남성신으며, 마을 앞 오른쪽에 자리한다. 이곳에 당집과 당나무, 고인돌들이 자리하고 있다. 신당에는 위패와 관련 물건이 없다. 별신제를 위해 새로 최근에 지은 것이며, 이전에는 고인돌에 차려 놓고 지었다고 전해진다.1

상동마을 별신제는 2010년 3ㅇ춸 3일 강진군의 향토문화유산 제41호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이곳이 논밭의 한 중에 있는 외진 곳처럼 보이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한길(큰길)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주막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당산나무 밑에서 쉬거나 주막에서 술과 식사를 하기도 했다.2

지금은 하분재(느진재)가 신산로가 생기고, 포장도로가 되었지만 60년대까지만 해도 상분이나 분토 사람, 심지어 하분 사람들도 산동의 돗구재를 너머 마량으로 건너가곤했다.

영춘(永春)마을

영춘 마을은 영동삼거리에서 영동저주지로 가는 길 왼편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다. 산동과 같은 마을이었으나 해방 후 영춘 마을로 분리 된다. 영동저수지는 1978년 완공되었고3, 영춘 마을은 저주지가 있던 곳이었다.

  • 두루봉, 산에서 제주도까지 두루 보인다하여 붙은 이름4
  • 가역산, 남호 성머리에서 활을 쏘는 과녁판이란 뜻이다.
  • 덤밧산, 바윗밑에 숨어 난을 피했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 각시바우, 돌에 연지를 찍은 것처럼 점이 있어 붙인 이름
  • 형제샘, 덤밧산에서 두 곳의 샘물이라 붙인 이름
  • 딱구제, 서당이 위치해 학문을 닦는다는 뜻
  • 사다리고, 샛골을 올라가니 사다리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
  • 둥치기골, 나무나 풀을 베러 다니던 사람들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등목을 했다는 골짜기
  • 큰터, 윤씨 일가가 살았다는 곳
  • 용배등, 용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곳

마을 앞에는 고인돌이 몇 개 있다고 하지만 발굴도 관리도 되지 않은 체 버려져 있다.

  1. [출처] 강진군의 산간신앙 신동마을 별신제 ↩︎
  2. [출처] 강진신문, 20210520, “[추억과 함께 떠나는 걸어서 고향앞으로] 마량면 산동마을↩︎
  3. 어떤 곳에는 1977년 완공되었다고 나온다. ↩︎
  4. 이곳의 글들은 강진신문 “마을기행-마량면 영동리 영춘마을“의 글에서 지명만을 추려 정리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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