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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포리(垣浦里)
원포리는 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의 법정리다. 원포는 원래 포구였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앞 갯펄을 매립하면서 내륙으로 깊숙히 들어간 마을이 되었다. 현재 귀농 귀농지로 원포리가 주목 받고 있다고 한다.
-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남면 원포리(遠浦里)
-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원포리(遠浦里)
- 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 원포리(垣浦里)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원포리(遠浦里)
행정체계
마량면 원포리 관할 마을
- 원포(垣浦),연동(蓮洞),숙마(宿馬)
원포리 지명유래
원포(垣浦) 마을
원포의 지명은 조선시대 이전에도 존재할 만큼 오래 되었다. 원포의 한자어를 보면 원은 담원으로 관청이름을 의미하다. 지금은 원포라는 지명이 산 밑 마을이 되어 이상하게 보이지만 앞 바다를 매립하기 전에는 배들이 드나드는 포구였다. 이곳에 관청이 있었다는 것이다. 무슨 관청인지는 확실치가 않다.
향토사학자들의 이야기로는 마량에 마도진이 설치되기 전에는 원포가 큰 포구의 역할을 했고, 현재의 마량항은 작은 나룻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왜냐하면 량은 작은 나루터를 뜻하고 포는 큰 배가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주에서 오는 배들은 원포항에 내렸다.1 이러한 추론은 상당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삼국시대 이전의 과거이기에 사료가 없어 지명 외에는 증명할 방법이 없다.
향토지에서는 미포부곡에 존재했다고 하는데 정확하게 어떤 곳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마량과 관련이 있는 것을 보면 제주도에서 오는 말을 관리하는 관청이나 마을이 아니었을 싶다. 원포는 남원포(南垣浦)로 불렸다. [신동국여지승람]에는 현 남쪽 57리로 기록되어 있을 만큼 중요한 마을이다. 이곳을 사람들은 ‘땅개’라고 불렀다. 여기서 ‘개’는 바다나 강 주변에 있는 마을이나 들판을 뜻한다. 하지만 ‘땅’은 그냥 땅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말에서 변형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연동과 숙마는 원포 마을에서 갈라져 나간 마을들이다.
연동(蓮洞) 마을
연동도 원포에 속한 마을이었다. 하분에서 원포를 지나 마량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해방 후 숙마와 연동이 다른 마을로 나뉘어 진다. 두루봉과 봉대산 사이에 옛 만호가 제를 지낸 당터가 금산당이다. 월치라 불렀는데 마을 앞 저수지가 생기면 이곳에 연꽃이 피어 올라 연꽃 마을이란 뜻의 연동이라 부르게 된다. 저주지는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0년이라고 한다. 지금은 뵈지 않는 저주지는 어디였던 것일까?
숙마(宿馬) 마을
숙마는 말들이 잠을 자는 마을이란 뜻이다. 숙마 마을 앞에는 말들에게 물을 주는 방숙샘이 있었으나 개담공사로 없어졌다고 한다.2
- 강진신문, 20100212, 김철 “바다를 사랑했던 다산, 강진의 길은 모두 바다로 통했다” ↩︎
- 강진고을 신문, 20160810, “강진만 포구 중국과 일본으로 통하여 청자를 실어 날랐던 장보고 시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