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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량면 송정리(松汀里)
개요
송정리는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의 법정리다. 칠량면 소재에서 관산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송정리 마을 입구에는 송정리 지석묘군이 있어, 이곳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자리잡고 살았음을 말해 준다.
행정체계
칠양면 법정리
- 단월리 丹月里 : 목암(牧岩),율변(栗邊),월송(月松)
- 동백리 冬栢里 : 동백(冬栢),현천(玄川),벽송(碧松)
- 명주리 明珠里 : 명주(明珠),사구(沙邱)
- 봉황리 鳳凰里 : 덕동(德洞),보련(寶蓮),봉황(鳳凰),사부(砂富)
- 삼흥리 三興里 :신흥(新興),삼강(三康)
- 송로리 松路里 : 구로(舊路),송산(松山)
- 송정리 松汀里 :영계(永桂),송촌(松村)
- 영동리 永東里 :영동(永東),강동(講洞),월궁(月弓),운산(雲山),연곡(蓮谷)
- 영복리 永福里 : 영풍(永豊),만복(萬福),한림(翰林)
- 장계리 長溪里 : 아산(峨山),반계(磻溪),장포(長浦)
- 현평리 峴坪里 : 고현(高峴),신암(新岩)
- 흥학리 興鶴里 : 중흥(中興),학동(鶴洞)
마을 소개 및 지명 유래
송정(松汀)
송정리는 송촌의 소나무에서 왔다. 마을 입구에 송정리 지석묘군이 있다. 많은 지석묘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영계(永桂) 마을
영계는 일제강점기 시절 영평리(永平里)와 계동(桂洞), 정동(貞洞)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해방 후 영평과 계동이 합하면서 영계리로 부른다. 계속 사이에 자리 잡으 적지 않은 동네이다. 동네가 산자락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현재 논으로 있는 곳들이 전에는 개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을은 조선시대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조선시대 청송심씨가 자리를 잡았고, 이후에 청주김씨, 성산배씨가 입촌해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마을이 굉장히 특이하다. 마을 밖에서 보면 집이 몇 채 밖에 보이지 않아 작은 마을로 보이지만 실제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집이 많아서 놀란다. 영계마을은 일제시대 박하와 면화 주산지였다. 목포를 중심으로 면화 재배가 활성화 되면서 강진도 많은 곳에서 면화가 재배 되었다.[고화도 면화 재배지]
할미봉
시루봉
마을 뒷산의 작은 언덕이다. 영계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산이다.
송촌(松村) 마을
마을에 소나무가 많아 송촌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중산이라 불렀다. 마을 뒤로는 비재산(179m)가 자리하고, 앞으로는 칠량천과 영주천이 만나 흐른다. 동학 운동이 일어날 때 관군에게 밀린 동학도들이 송촌 마을에 진을 치기도 했다.1 6.25 때고 많은 인명피해로 인해 마을이 사라질 뻔한 위기도 처했다고 한다.
마을 앞에는 150년 정도된 정자나무가 마을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하천의 보가 만들어 지기 전까지는 마을 앞에 많은 민물고기가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그때를 기억하며 아쉬워 한다.2
- 강진일보, 20230504, “[추억과 함께 떠나는 걸어서 고향앞으로] 칠량 송촌마을” ↩︎
- 강진고을신문, 20090323, “이장님 이장님 우리이장님 칠량면 송정리 송촌마을 윤재원(70세)이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