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영복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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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량면 영복리(永福里)

개요

영복리는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의 법정리다. 영풍마을, 만복마을, 한림마을을 두고 있다. 한림마을 입구에는 고인돌군이 있어 청동기 시대 즈음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음을 보여준다.

행정체계

칠양면 법정리

마을 특징 및 지명유래

영풍(永豊)

마을 앞은 강진만이 도도하게 흐른다. 강진만 상부에 속하는 영풍 마을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역이라 많은 종류의 어족이 풍성했다. ‘모든 것이 영원히 풍부하다’는 뜻에서 영풍이라고 했다. 강진읍에서 칠량쪽으로 내려가면 더좋은 농업회지나 오른쪽으로 빠지는 작은 길을 타고 들어가면 만복마을, 영풍마을이 있다. 영풍마을은 1500년대 청주김씨 김만추가 이거함녀서 마을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김해김씨, 해남윤씨, 밀양박씨가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1

마을 회관을 중심으로 본 마을과 샛마을로 나뉜다. 동쪽 칠량농협 방향은 샛돔이고 바닷가는 본마을이다. 일제강점기 전에는 바닷물이 마을앞까지 들어왔다.

만복(萬福)

만복마을 건너편은 도암면의 만덕산이 보인다. 청주김씨가 터를 잡은 후 건너편에 보이는 만덕산이 있어 복이 절로 들어온다하여 만복이라 하였다. 만복 마을의 옛 지명은 역송(亦松)이라고 한다.

마을에 있는 정자나무는 1982년 강진군 보호수로 지정되었다.2 마을 바로 앞까지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왔지만 일제시대 간척사업을 통해 농경지가 되었다.

백원당처사김대수효행비

유인해남윤씨열행비

윤미임 할머니의 효행을 기린 비석이라고 한다. 1935년 남편과 결혼했지만 5년 뒤에 지병을 앓던 딸을 보낸다. 이후 4년 뒤에 남편도 지병으로 눕게 된다. 윤씨는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한다. 하지만 윤할머니가 23세 되던 해 1943년 남편도 세상을 떠난다. 윤할머니는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남편에게 먹이는 정성을 다하지만 살리지 못한다. 지금까지 홀로 살아왔지만 8명의 조카를 데려와 키웠다고 한다.3

한림(翰林)

한림의 옛 지명은 대통(代/大 通)이었다고 한다. 마을 출신 중에 한림학사가 배출되어 한림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한림학사는 고려시대 한림원의 정4품 관직으로 정원 2명이었다. 문한 관서로 한림원, 비서성, 보문각, 동문원, 유원이 있어씨만 한림원이 최고로 인정 받는 곳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예문관에 검열직에 채용된 사람을 한림학사라 불렀다. 누가 한림학사가 되었는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강진군 칠량면 지석묘

강진군내 지석묘는 848개로 알려져 있다.4

  1. 강진일보, 20240328, “[추억과 함께 떠나는 걸어서 고향앞으로] 칠량면 영풍마을↩︎
  2. 강진신문, 20110107, 萬가지의 福이 깃든 만복마을 ↩︎
  3. 강진신문, 20110121, “15세에 결혼 10년 만에 남편과 자식을 잃었지만…↩︎
  4. 강진일보, 강진의 고인돌은 848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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