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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 개요
전라남도 목포시는 전라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인구 21만1 정도의 중소 도시이다. 한때 대한민국 5대 도시에 들만큼 부유한 도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쇠락하였고, 좁은 지역적 한계와 옅은 수심으로 인해 공단과 항구가 빠져 나가면서 계속 쇠락하고 있는 도시 중의 하나이다. 목포시의 많은 수의 인구가 오룡지구로 불리는 목포와 무안 신도시로 빠져 나가고 있어, 목포 원도심은 급속하게 슬험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태이다. 앞으로 이러한 구도심 공동화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목포시 행정 구역
행정동은 23개이며, 법정동은 64개이다. 623개 통과 2,695반이 있다.
목포시 법정동
경동, 경동1가, 경동2가 금동, 금화동, 남교동, 남교동, 달동, 달성동 대성동, 대안동, 대양동, 대의동, 대의동1가, 대의동2가, 대의동3가 만호동, 명륜동, 무안동, 보광동, 복만동 북교동, 산정동 삼학동, 삼향동, 상락동1가, 상락동2가 서산동, 석현동 수강동, 양동, 영해동, 옥암동, 온금동, 용당동, 유달동, 유동, 율도동, 죽교동, 죽동, 중동, 중앙동, 중앙동1가 중앙동2가, 중앙동3가, 창평동, 축복동, 측후동, 항동, 해안동, 행복동, 호남동,
목폭시 행정동
용당1동, 용당2동, 연동, 산정동, 대성동, 목원동, 동명동, 삼학동, 만호동, 유달동, 죽교동, 이로동, 북항동, 용해동, 연산동, 원산동, 상동, 하당동, 신흥동, 삼향동, 옥암동, 부흥동, 부주동
목포시 지명유래
목포(木浦)
목포 지명유래는 불분명하다. 몇 가지의 설이 있다. 나무가 많은 포구란 뜻의 목포가 있으나 신빙성이 적다. 두 번째는 목화가 많이 난다하여 목포라 하였다고 한다. 이 또한 신빙성이 적다. 마지막으로 서해에서 육지로 들어오는 길목으로서의 ‘목개’라 불렀다고 한다. 즉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하여 목포라 불렀다고 한다. 학자들은 세 번째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본다. 목포라는 지명은 고려시대부터 전해온 것으로 매우 오래 되었다. 지금은 항구로서의 의미를 상실했지만 일제강점기 시대까지만 목포는 5대 개항장에 될 만큼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였다.
- 목포는 법정리가 너무 작고 많다. 또한 일괄적으로 행정동이 한 법정동을 그대로 관할하지 않고 쪼개진 경우가 많아서 정리가 쉽지 않다. 기준은 법정리는 작은 제목으로, 행정동은 큰 제목으로 넣어 구분했다. 법정동과 행정동 구분하지 않고 가나다순으로 정리했다.
경동
현재 만호동에 속한다. 경동은 유달초등학교 목포진지 사이에 있는 곳으로 경동1가와 2가가 있다. 왜인들의 거주지로 적산가옥이 즐비하다. 경동이란 단어가 어디서 왔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다.
금동
현재 만호동 관할 지역이다. 경동에서 연얀여객터미널 방향으로 앞쪽 부분이다. 금동1가와 금동2가가 있다. 이곳 역시 왜인들이 거주하던 전형적인 지역이다.
금화동
현재 조선쫄보탕을 중심으로 옆으로 퍼져 잇는 지역이다. 이곳은 원래 왜인들은 유곽시설이 있던 곳이며, 자쿠라마치라 불렀다.
- 참고로 유곽은 왜인들의 관에서 허가를 받은 성매매업소로 일종의 공창을 말한다.
남교동
북교동과 남교동 사이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었고, 그곳을 쌍교장터라 불렸다. 다리를 중심으로 위를 북교동, 아래를 남교동이라 하였다. 그런데 다리가 있던 곳이 어디인지 알 길이 없다.
달동
압해면 지역으로 달리섬이었다. 1963년에 목포시에 편입되어 달동이 되었다. 아직도 섬이며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지역이다.
달성동
무안군 부내면 신죽호 윗동에 지역이었다. 일제시대 남해안동 1정목과 2정목의 일부를 합하여 해안통3정목이라 불렀다. 현재 목원동 관할하에 있다.
대성동(大成洞)
원도심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목포대선 LH천년나무아파트가 중심에 자리한다. 목포의 동 자체가 워낙 작아서 천년마무 아파트 단지가 1/3을 차지할 정도다. 1914년 죽동 남교동 신창동을 병합하여 명치동이라 물렀다. 해방 후 1948년 대안동으로 개명한다.
장터 거리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크게 번성한다는 의미로 대성할 동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장터거리는 현재의 대성파출소 앞 주변이었다고 한다.
대안동
목원동 관할의 법정동이다. 개항전 바다였으나 왜인들에 의해 매립되면서 육지가 되었다. 일제시대 명치정이라 불렀다. 해방후 대안동이 된다.
대양동
대의동
동명동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사람들이 해안동, 서정, 광동이라 불렀다. 광복 후에 동명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일본 사람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 동명동 관할 법정리 / 동명동, 광동, 호남동, 산정동
만호동(萬戶洞)
조선시대 수군만호가 머물렀던 곳이다. 일제강점기때 목포대라 불렀다. 해방 후 옛 지명을 회복하여 만호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만호(萬戶) 조선시대 무관의 일종으로 지방군영의 장수라는 쯧이다. 품계는 종4품이었다. 육군을 병마만호, 수군은 수군만호 불렀다. 육군 만호를 극히 적었고, 대부분 수군만호였다고 한다.
- 만호동 관할 법정리 / 만호동, 수강동, 항동, 중앙동, 금동, 경동, 중동, 해안동, 복만동
- 행복동, 영해동, 대의동, 보광동, 축복동, 유동, 산정동 일부
명륜동
무안동
목원동
목포 원도심의 핵심 지역이라할 수 있다. 수많은 금융과 상권이 들어섰던 곳이다. 지금은 하당과 옥암쪽으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는 실정이며, 원도심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목원이란 지명은 개펄이던 이곳을 매립하고 도시로 만들면서 목포의 도심으로 성장할 것을 기대한다는 뜻으로 목포의 원중심이란 뜻으로 목원이라 지었다고 한다. 현재 목포역, 정명여자고등학교, 목포세무서, 북교 초등학교 등이 자리하고 있는 실질적인 목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 목원동 관할 법정동 / 북교동, 남교동, 죽교동, 달성동, 양동, 상락동1가, 상락동2가, 호남동, 무안동, 측후동, 죽동, 명륜동, 대안동, 창평동, 산정동
보광동
복만동
북교동
목원동 관할 법정리다. 쌍교 다리 위로 북교동이라 불렀다. 다리 위의 동네라는 뜻이다.
북항동
목포 사람들이 뒷개라 부르는 지역이다. 북항동은 북항동 만을 의미하지 않고 목포의 북쪽, 즉 뒷쪽 주변을 말하는 포괄적인 단어다.
- 북항동 관할 법정리 / 산정동 일부
산정동
- 관할 법정리 산정동, 연산동, 용당동 일부
산에 정자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제시대 용당리와 관해동 일부, 연치동, 백련동을 병하여 산정리로 부른다. 이후 무안군 이로면에 편입되었다. 1932년 목포부로 편입되고 광복히 산정1동 산정2동 산정3동으로 나뉜다. 목포 시내에서 원도심인에도 약간 높은 구릉지대에 자리 잡았다.
삼학동
삼학동은 삼학도에서 유래했다. 삼학도는 세마리의 학이란 뜻으로 삼학도에서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삼향동
상락동
서산동
유달동 관할 법정리다. 시화골목, 연희네 슈퍼가 있던 곳이다. 바로 앞이 일제시대 유곽이 있던 금화동이다.
석현동
수강동
양동
연산동
백련동과 산정동에서 한자씩 가져와 연산동이라 지었다. 목포 사람들은 연산동 주변과 북항을 뒷개3라 부른다.
- 전남 목포시 연산동
- 광주 광산구 연산동
- 부산 연제구 연산동
영해동
옥암동
온금동
용당동
용해동
광복후 용당동의 일부를 관해동을 합한다. 두동에서 한자씩 가져와 용해동이라 하였다. 현재의 포미 주공 단지가 용해동이다. 지번으로 보면 과거 용해동은 상당히 큰 동이었다.
- 용해동 관할 법정리 / 용해동
유달동
유달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왜인들이 거주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 유달동 관할 법정리 / 유달동, 율도동, 온금동, 서산동, 금화동, 죽교동, 달동, 중앙동1가, 중앙동2가, 중앙동3가, 대의동1가, 대의동 2가, 대의동 3가, 경동1가, 경동2가
유동
율도동
이로동
- 이로동 관할 법정리 / 용해동 일부
죽교동
- 죽교동 관할 법정리 / 죽교동 대성동 산정동 일부
죽동
중동
중앙동
창평동
축복동
측후동
하당동
항동
해안동
행복동
호남동
[참고 자료]
이용화님의 블로그 목포지명유래
- 목포시 인구 통계 [목포시 홈페이지 통계정보 인구] ↩︎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목포시 ↩︎
- 뒷개는 앞개의 반대편에 자리한 동네를 말한다. 뒷는 뒤를, 개는 내나 천이 바다와 이어진 곳을 뜻한다.[출처,[초동여담]목포는 왜 木浦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