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장흥군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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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장흥군

장흥군(長興郡) 개요

전라남도 장흥군은 강진군 동편에 자리한 곳으로 표고버섯과 한우가 유명한 곳이다. 탐진강이 가로지르는 곳이자 드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전남 서남권의 9개 시군 64만 식수원인 장흥댐이 있다. 조선말기 나주부 장흥군으로 개편되고, 1896년 도서 지역(섬)은 신설된 완도군에 편입된다. 1986년 전라남도 장흥군이 된다. 1914년 천포면, 회령면, 옹치면은 장흥동쪽에 자리한 보성군에 편입뇌다. 완도군에 편입되었던 장흥과 매우 가까운 섬들은 완도군에서 반환받아 다시 장흥군이 되었다.

장흥군 행정지도1

장흥군 행정구역 및 지명유래

장흥군의 행정구역은 3개읍, 7개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3읍 장흥읍 관산읍 대덕읍

7면 용산면 안양면 장동면 장평면 유치면 부산면 회진면

  • 장흥군목 동백나무
  • 장흥군화 진달래
  • 장흥군조 비둘기

장흥읍(長興邑)

장흥읍은 장흥군의 중심이 되는 지역으로 탐진강이 가로지르고 있다. 장흥읍은 고대에 수령현으로 불렸고, 그 이전에는 고마미지현이었다. 고려초 정안현에서 인종 대에 지장흥부사로 승격한다. 이때 장흥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고려사지리지에 따르면 고려 인종때 공예 태후 임씨의 고향이 장흥이었다고 한다. 1895년 장흥군이란 정식 명칭이 사용되고,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4년 보성군의 일부를 편입시킨다. 장흥이 어떤 의미에서 사용된 것인지는 문헌에 등장하지 않으므로 알 길은 없다.

장흥(長興)의 유래

계속하여 인터넷을 검색하는 가운데 흥미로운 기사하나를 발견했다. 2019년 5월 20일자로 전남목포신문에 “장흥관산중학교, 천관산에는 공예태후 삼비산에는 삼황비”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이다.2 이곳에는고려 무신시대 태후였던 공예태후에 관한 것이다. 공예태후는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에서 태어났다. 장흥관산고에 공예태후와 그의 아버지 임원후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공예태후는 인종의 황후일 뿐 아니라 의종, 명종, 신종, 세 왕의 어머니였다. 무신정권 시대에 왕들을 지켜 안정시킨 인물로 알려져 있다. 누가 내렸다는 말은 없는데 공예태후로 인해 공예태후가 살던 곳을 ‘길게 흥하라’라는 장흥(長興)이라는 이름을 하사 했다고 한다.

장흥읍을 통과하는 탐진강

관산읍(冠山邑)

관산읍 앞과 대덕읍 뒤에 있는 천관산에서 왔다. 천관산은 해안에 자리하면서도 높이가 무려 724m로 내륙에 있었다면 족히 1500m 이상을 됐을 산이다. 천관산에서 발원한 고읍천이 관산을 통과하여 득량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조선시대 장흥부 부청이 있던 곳이며, 1392년 부청을 장흥읍 건산리로 옮기면서 관산 이전 부청이란 뜻으로 고읍방 또는 고읍면이라 불렀다.

대덕읍(大德邑)

대덕읍은 일제강점기 시절 대흥방 또는 대흥면(大興面)이라 불렀던 지역과 내덕면(來德面)을 합하여 대덕이 되었다. 대덕면(大德面)으로 있다 1980년 대덕읍(大德邑)으로 승격한다.

대덕장 5.10일에 장이 열린다.

용산면(蓉山面)

장흥읍과 관산읍 사이에 있는 곳으로 바다에 닿는 곳을 제외하면 모두 분지형태로 되어 있다. 남상천이 면의 중앙에서 흘러 득량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장흥의 남쪽에 있어 남면이라 불렀다. 1936년 서쪽에 있는 부용산의 이름을 따서 용산이라 불렀다. 관산이하 마을에서 장흥 읍내로 가려면 반드시 용산을 거쳐 가야 했다. 억불산 동쪽 기산 마을 쪽으로 난 도로를 이용했지만 자유래로 넘어가는 길이 뚤렸다. 수년 전에는 자울재 터널이 뚤리면서 억불산을 통과해 곧바로 장흥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안양면(安良面)

장흥부에 딸린 안양향 또는 안회향이었다 1914년 안양면이 된다. 유인도로 장재도가 있고, 강진 장흥 근방에서 유일한 해수욕장인 수만해수욕장이 있다. 작고 볼품 없지만 멀리 가지 않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려 이곳에 오는 경우가 많다. 여름이면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다.

장동면(長東面)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산지로 형성된 곳이다. 오래 전부터 장흥에서 보성, 순천, 부산 방향으로 빠지는 국도가 있었고, 현재는 영암-순천 남해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옛적에 장택현 지역이었고, 장택현의 동쪽이라 장동방이라 불렀다. 이후 장동면이 된다.

장평면(長平面)

장평면은 장흥군의 북동쪽 끝자락에 자리한다. 동쪽으로는 보성군과 맞닿아 있다. 백제 때 계천현이었다. 장택 서쪽이란 의미라 장서방 또는 장서면으로 불리었다. 1914년 부평면의 23개동리를 합하여 장평면으로 부른다. 이름은 장서면과 부평면에서 하나씩 가져와 합성한 것이다.

유치면(有治面)

장흥읍 기준 북쪽에 자리하며 장흥댐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장흥부에 딸린 유치향(有恥鄕)이었다. 조선시대에 유치면이 되어 지금까지 이름을 보존하고 있다. 장흥의 유적지 45%가 유치면에 분포될 정도로 의미가 깊은 곳이기도 하다. 고려시대의 관청과 부대시설, 사찰 등이 자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치향의 뜻은 다스림이 있는 곳이란 뜻으로 지금의 서울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3

부산면(夫山面)

장흥읍의 북쪽에 위치하며, 유치면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로 되어 있다. 유치댐에서 시작하는 탐진강이 부산면 중앙을 관통하여 흘러간다. 주변으로 평화가 펼쳐져 있다. 용반리, 구룡리 일대에는 용반평화와 부산평야가 너르게 펼쳐진다.

부산면의 이름은 부암산에서 왔다고 한다. 그런데 부암산이 어딜까? 아무리 찾아도 없다. 마을 앞의 작은 산인가?

회진면(會鎭面)

관산읍에서 대덕읍으로 가는 길로 가다 산외동 입구인 관흥삼거리에서 둑길을 따라 들어가면 회진이 나온다. 회진은 대덕읍과 같은 생활권이며 한 때 대덕면에 속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회령진이 있는 곳으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 중의 하나였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회령에 등장한다. 1914년 일제시대 행정개편을 하면서 대덕면 회진리로 편입한다. 1985년 회진 출장소를 설치하고, 1986년에 회진면으로 승격한다.

회진이란 이름은 삼국사기지리에도 등장하는 ‘회령현’에서 왔다. 조선시대 회진에는 장흥회령포진이 있었고, 동헌, 객사, 사령청, 장리청, 군기고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회진면 입구에 자리한 회령진성 2016년 8월

  1.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장흥군 작성자 장길산] ↩︎
  2. 전남목포신문, “장흥관산중학교, 천관산에는 공예태후 삼비산에는 삼황비↩︎
  3. 이 부분은 장흥신문 박형상 변호사의 “‘장흥 유치(有治)’, ‘장흥 유치(有恥)’ 을 참고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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