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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영국과 프랑스에서의 커피하우스 문화 형성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커피가 유럽에 본격적으로 전파되면서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커피하우스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정치, 경제, 사회, 예술에 걸쳐 활발한 소통의 장을 제공했으며, 커피하우스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지식과 정보를 교류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커피하우스 문화는 그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따라 독특하게 발전하면서 두 나라에서 중요한 문화적 유산이 되었습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 ‘페니 유니버시티’의 탄생
영국에서 커피하우스는 1650년대 옥스퍼드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후 런던에 빠르게 퍼지며, 커피하우스는 지식인, 상인, 정치인들이 모여 자유롭게 논의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입장료가 단 1페니였기 때문에 ‘페니 유니버시티(Penny University)’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1페니만 내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다양한 계층과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최신 소식을 듣고 토론을 벌일 수 있었기 때문에, 커피하우스는 사실상 대중을 위한 ‘학교’ 역할을 했습니다.
커피하우스는 지적 교류와 정보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상인과 해운업자들 사이에서는 커피하우스가 사업 파트너를 만나고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에드워드 로이드 커피하우스’는 해운업자와 보험업자들이 모여 선박 보험 계약을 체결하는 장소가 되었고, 이 커피하우스는 훗날 세계적 보험사인 ‘로이즈(Lloyd’s of London)’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또한 ‘윌스 커피하우스’는 예술가, 작가, 극작가들이 모여 교류하는 공간이 되어 런던의 예술과 문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나라 196-80년대 다방과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네요.
정치적 토론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특히 영국 내 내전과 명예혁명, 왕정 복고와 관련된 논의가 자주 이루어졌습니다. 커피하우스는 대중의 정치적 관심과 비판을 표출하는 장이 되었으며, 정부에 대한 불만이나 정치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커피하우스는 종종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에 영감을 준 장소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다만 이러한 활발한 토론 때문에 커피하우스는 정치적 불온의 중심지로도 여겨졌고, 1675년 찰스 2세는 커피하우스가 불온한 사상의 온상이 될 것을 우려해 일시적으로 폐쇄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커피하우스에 대한 대중의 사랑과 영향력은 지속되었고, 곧 폐쇄령은 철회되면서 영국 내 커피하우스는 더 많은 대중을 위한 소통 공간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커피하우스: 철학과 예술의 중심지
프랑스에서의 커피 문화는 이탈리아와 영국에 비해 조금 늦게 시작되었지만, 17세기 후반 프랑스 상류층 사이에서 커피가 유행하며 커피하우스가 빠르게 퍼졌습니다. 특히 파리는 프랑스의 정치, 철학, 예술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커피하우스는 새로운 사상과 예술적 교류의 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프랑스의 첫 커피하우스는 1686년 ‘카페 드 프로코프(Café de Procope)’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유서 깊은 장소입니다. 프로코프는 당시 파리에서 예술가, 철학자, 작가들이 모여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카페 드 프로코프에서는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 같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모여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논의했으며, 이곳은 계몽 사상이 퍼져나가는 거점이 되었습니다. 볼테르는 특히 커피 애호가로 유명했으며, 그는 매일 5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며 창작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카페 드 프로코프는 철학자들뿐 아니라 당시 예술가, 작가,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만남의 장소로 인기를 끌었으며, 그로 인해 프랑스의 커피하우스는 단순한 음료 소비처가 아닌 지식과 사상의 온상으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프랑스 커피하우스는 프랑스 혁명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혁명 전야, 커피하우스는 민중이 모여 불평등과 정부의 부패에 대해 논의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특히 자코뱅 클럽의 회원들이 파리 커피하우스에서 회합을 가지며, 혁명의 방향과 목표를 논의하였으며, 혁명 지도자들이 일반 시민과 직접 소통하는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커피하우스는 점차 대중 정치와 시민 의식을 형성하는 공간으로 진화했고, 이는 후대에까지 이어져 파리가 지식과 사상의 수도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커피하우스의 비교와 문화적 의미
영국과 프랑스의 커피하우스는 서로 다른 역사적, 사회적 배경 속에서 독특하게 발전했지만, 공통적으로 지식과 사상의 교류 장소라는 점에서 중요한 문화적 의미를 가집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상업과 비즈니스, 그리고 대중적인 정치 토론의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이는 당시 해상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영국 사회에 맞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반면, 프랑스의 커피하우스는 정치적 토론과 철학적 사색, 예술적 교류의 장으로 자리 잡으며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영국과 프랑스 각각의 사회적,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면서 커피하우스의 기능을 확장시키고 독특한 문화로 발전시켰습니다.
두 나라의 커피하우스는 또한 신문과 인쇄물이 흔치 않았던 시기에 정보와 여론이 형성되는 공간으로 역할을 했습니다. 커피하우스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소식을 접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정보의 확산과 여론 형성을 도왔습니다. 이는 현대의 언론과 같은 기능을 수행했으며, 이러한 배경은 오늘날의 카페 문화와 사교적 기능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커피하우스는 커피를 마시는 장소를 넘어 정치적, 지적, 예술적 소통의 중심지로 발전하며, 두 나라의 사회적 변혁과 문화적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커피하우스는 이제 단순한 커피 음용을 넘어 사람들의 의견을 나누고 사상을 논하는 공공장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는 이후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유럽 커피 문화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Café Procop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