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중구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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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일제강점기 이전 부산의 중심지가 동래였다면 일제강점기부터 부산의 중심은 단연코 중구다. 중구를 중심으로 서구의 대신동과 동구의 초량동을 중심으로 발전해 나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구는 부산 중의 부산인 셈이다. 중구에는 자갈치 시장, 롯데백화점, 용두산공원, 피프광장, 국제시장, 부평시장, 보수동책발골목, 민주공원까지 부산의 근대과 현대를 아우르는 유산이 포진하고 있다. 초기에 부산역도 한국무역협회 바로 곁에 있었으니 그야말로 부산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그 힘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지만 서면과 해운대, 광안리 등에 대부분 빼앗기고 옛 영광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불과 30년 전 만해도 최고의 땅값과 인기를 자랑했는데 말이다. 부산의 중구의 역사를 여기사 일일히 다룰 수는 없지만 중구는 부산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당연히 일제강점기 시절과 맞물려 있다.

여기사는 개론적인 지명유래만을 다루고 후에 기회가 생기면 중구 안에 있는 다양한 지명의 유래와 역사를 다룰 예정이다. 중구에는 9개의 행정동 법정동이 있다.

부산광역시 중구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중구 (부산광역시]편은 참고 바랍니다.

중구(中區) 법정동 행정동

중구 법정동

  • 대청동 1가(大廳洞 一街)·대청동 2가·대청동 3가·대청동 4가·중앙동 1가(中央洞 一街)·중앙동 2가·중앙동 3가·중앙동 4가·중앙동 5가·중앙동 6가·중앙동 7가·대창동 1가(大昌洞 一街)·대창동 2가·동광동 1가(東光洞 一街)·동광동 2가·동광동 3가·동광동 4가·동광동 5가·보수동 1가(寶水洞 一街)·보수동 2가·보수동 3가·부평동 1가(富平洞 一街)·부평동 2가·부평동 3가·부평동 4가·광복동 1가(光復洞 一街)·광복동 2가·광복동 3가·신창동 1가(新昌洞 一街)·신창동 2가·신창동 3가·신창동 4가·창선동 1가(昌善洞 一街)·창선동 2가·남포동 1가(南浦洞 一街)·남포동 2가·남포동 3가·남포동 4가·남포동 5가·남포동 6가·영주(瀛州)

중구 행정동

  • 중앙동 · 동광동 · 대청동 · 보수동 · 부평동 · 광복동 · 남포동 · 영주1동 · 영주2동

지도제작 장길산 출처는 위키백과 광복동

중구의 지명유래

지명유래는 행정동에 따르며, 그 외의 지명을 추가적으로 다룬다.

중구(中區)

중구라는 지명은 1951년 부산시 중부 파출소가 설치되면서 갖게된 것이다. 1957년 구제로 변화를 하면서 중부가 중구로 바뀐 것이다. 부산을 이해할 때는 항상 중구를 중심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산은 중구를 중심으로 뻗어 나갔기 때문이다.

중구에 속하는 자갈치나 남포동 등은 실제로 일제강점기 시절 매축공사가 없었다면 바닷가 또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1912년 영선산을 헐어 자갈치와 남포동 일대, 영주동 앞을 매축하여 평평한 지역으로 만들었다.

동구의 부산진역도 당시 함께 진행된 매축으로 인해 생겨난 곳이어서 중구와 동구는 은근히 자신들이 먼저 부산의 시작이라고 우기는 면도 적지 않다. 실제로 부산진역 수정가로공원에 가면 서문쇄약이라는 글자를 넣고 ‘부산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산이란 용어가 가마솥이며, 가마솥은 부산진역이 있는 수정동 지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초량왜관도 초량에 있었다. 여러모로 중구와 동구는 기싸움을 하고 있다. 우리는 밥콘이나 먹는 걸로.

광복동(光復洞)

광복동은 8.15광복을 기념하여 일본인들이 지냈던 곳을 ‘광복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광복동은 용두산 공원을 비롯해, 용두산 아래 패선거리와 국제시장, 아리랑거리, 남포동 먹자 골목 등을 아우르는 용두산 공원 남서쪽을 포함한다. 부평시장, 깡통시장은 부평동에 속한다.

신창동(新昌洞)·창선동(昌善洞)

창선동가 신창동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의 중심지였다. 창선동에는 행정과 서정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남포동

남포동은 말그대로 포구이다. 남쪽에 있는 포구란 뜻이다. 자갈치 시장과 남포동건어물 도매시장이 있는 곳이다. 롯데백화점 광복점 건너편부터 자갈치 공영주차장까지 남포동이다. 한 동 치고는 너무 작다. 대부분 상인들이며, 실제 거주자는 거의 없다. 그런데 동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일제강점기 때 매축이 이루어지면서 남빈정이라 하였다. 남빈은 남항, 북항은 북빈으로 불렀다. 남빈정은 남항동인 셈이다. 영도에 남항동이 있어 혼돈을 피하기 위해 남포동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자갈치

자갈치라는 지명은 원래 자갈치역 주변이 자갈이 많은 해변가였기 때문이다. 한때 이곳은 남빈 해수욕장으로 불리기고 했으나 매축 공사를 통해 완전히 매립되었다. 영도대교를 중심으로 서쪽을 남항, 동쪽을 북항 또는 부산항으로 부른다. 송도에서 영도를 통과해 감만동으로 빠지는 다리를 남항대교와 북항대교로 지었으나 거의 완성될즈음에 북항대교는 근사하게 바꾼다면 부산을 대표한다는 의미로 ‘부산항대교’로 바꾸었다.

자갈치시장<br>
영도대교에서 바라본 남항과 자갈치 시장

대청동

대청동은 중구의 중심에 위치한다. 용두산 공원 뒤로 작은 산이 보이는데 복병산이다. 일제강점시절 복병산에는 일본인들의 상수도를 위한 배수지가 지하에 있다. 1910년 부산최초의 상수도 시설인 배수지가 설치되어 초읍의 성지곡수원지에서 끌어와 일본인 거주지에 보냈던 것이다.1 현재 부산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 중동부사업소 자리이다.

대청동 색채마을에서 바라 본 복병산

대청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동래부사나 부산첨사가 일본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연회대청이 있던 곳에서 비롯된 것이다. 연회대청이 줄어 ‘대청’만을 사용하여 대청동이 된 것이다. 연향대청은 남일초등학교2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복병동(伏兵洞)

복병동은 1984년 대청동 4가로 81-83번지로 편입되어 이름이 사라졌다. 복병은 복병산에서 왔다. 일제강점기 시절은 복병동은 후쿠마치(福田町)3로 불렸던 곳이다. 복병산의 이름이 일본 왜관을 감사하기 위한 복병이 있던 곳에서 유래했다. 현재 카톨릭센터가 있는 곳이 복병동이었다.

동광동(東光洞)

초량 왜관의 동관으로 일본에서 오는 배가 처음 닿은 곳이라고 한다. 동광동의 동의 의미가 합하여 동광동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부산중부 경찰서 뒤로는 논치시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복병산 동쪽일부부터 용두산공원 동쪽으로 이어지는 긴다란 형태를 가지고 있어 부산에에서 가장 좁고 특이한 구조의 동이다.

동광동에는 제생병원, 부산데파트, 부산해관, 영선고개, 논치시장, 40계단, 백산기념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많이 벗어난 옛기억의 유물이 많은 곳이다.

보수동(寶水洞)

보수동은 보수동 헌책방골목으로 유명한 곳이다. 보수천이 흐르고 있어서 보수동이라 지었다. 대청동이 된 옛 복병동을 바로 위에 두고 있다. 보수천의 옛이름은 법수천인데 보수와 법수는 동일한 의미이다.

부평동(富平洞)

국제시장은 광복동에 속하고 길 건너 깡통시장과 부평시장은 부평동에 속한다. 부평시장은 일제강점기부터 거대한 시장이었다. 국제시장은 광복 이후 시장이 형성되었고, 특히 6.25전쟁 이후 급속하게 성장했다. 부(富)는 부산의 부이고, 평(平)은 너른 평지란 뜻으로 부산의 너른 평지란 의미를 갖고 있다.

영주동(瀛州洞)

영주동은 영선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중부경찰서와 초량타이나타운 근방은 해안가에 있던 작은 두 개의 언덕이었다고 한다. 영선산의 위치는 현재 중부경찰서 삼거리다. 중부경찰서와 중앙119소방서 사이에 약 40m 정도 우뚝 솟아 오른 산이었다고 한다. 영선산 바로 아래가 바닷가였으니 사람들이 보기에 꽤나 높아 보였을 것이다. 영선산을 지나 초량에서 남포동방향으로 건너갔는데 이곳을 영선고개라 불렀다.

중앙동(中央洞)

중앙동은 동광동 동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영도대교 입구에서 영주사거리까지이다. 과거 부산역이 있던 자리이고, 부산세관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동은 과거에 바다였다 일제의 매축사업을 통해 평지가 된 곳이다. 영선산을 평착하여 현재의 중앙동 자리를 매축한 것이다. 1947년 부산의 중앙이라할 만한 중심부에 있다하여 중앙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리적인 중심이 아니라 시청과 부산역, 부두가 있어 정치 경제 중심이란 뜻으로 중심이다.

  1. 복병산 배수지 찾아가는 길은 네이버 블로그 [부산 가볼만한 곳 부산 중앙역 복병산 배수지]편을 참고 바람. ↩︎
  2. 남일초등학교는 1998년 9월 1일 폐교되었으며, 동광초등학교와 병합되었다. 현재는 광일초등학교로 불려지고 있다. ↩︎
  3. 후쿠다마치는 일본인 후쿠다의 거리라는 뜻이다. 이 부분은 [대청동에 편입된 복병동]이란 네이버 블로그의 글을 참조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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